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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Aug 03. 2015

마법의 조립 도구, 레고 #3 - 창작

이거시 레고의 종착역

앞선 글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레고의 진짜 매력은 조립을 넘어서 직접 하나의 조형물을 설계하고 블록을 취합해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다.


 ‘브릭나라’나 ‘브릭인사이드’ 같은 국내 정상급 커뮤니티에 가면 개인이 만든 엄청난 작품들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마치 원래 제품으로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교하다. 이뿐 아니라 매년 세계 각국을 돌며 레고로 탑을 쌓아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는 ‘레고 월드 타워’ 이벤트처럼 여러 명이 참여하는 형태의 창작품도 가능하다. 

2012년 한국에서도 진행된 레고 월드 타워 이벤트...15층 높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 레고 블럭이라는 정형화된 형태가 있기 때문인데, 주변의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레고에 빠지는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형화된 부품(코드)을 갖고 어떻게 조합하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 점에서 둘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미니 피규어....특징이 잘살아있다


보통 뛰어난 게임 디자인의 요소로 "Easy to learn, Hard to master" 을 이야기 하는데 레고는 이 점에 있어선 정말  탑랭커라고 부를 수 있다. 유치원 어린이도 금방 만들 수 있지만 새로운 요소를 구상하기 위해선 제품에 대한 이해도와 설계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은 매력과 동시에 도전 욕구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해외 창작품을 복원한 zzikssa님의 ‘스타벅스’


그렇다면 LEGO 사는 이렇게 자사의 소중한 제품을 변형하는 창작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답은

대. 환. 영이다.




개인적으로 ‘아, 레고는 역시 덕심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했던 것은 공식으로 운영되는 ‘레고 아이디어 (https://ideas.lego.com/ 예전 이름:CUUSOO - 일본어 ‘공상’에서 따옴)’라는 사이트였다. 



유저들은 이곳에 직접 만든 창작품들을 올릴 수 있는데, 이 중에는 ‘포켓몬스터’, ‘록맨’, 또는 영화 ‘아바타’의 우주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제품들이 많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쥬라기 공원>의 변종 공룡 작품
능력자들은 아예 이런 식으로 원형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해외 -Julian Fong님 작품)


방문자들은 쿠소에 방문해서 마음에 드는 제품에 투표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창작자들에게 묘한 경쟁 심리를 자극한다. 그러나 레고의 덕심 흔들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투표수가 1만 개를 넘어가면 무려 모든 창작 레고 마니아들의 꿈인 제품화를 검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진정으로 전세계 수많은 창작 레고덕을 한 군데에 모으는 효과를 발휘했다. 일본, 미국, 한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시시각각 기발한 창작품들이 ‘제품화’의 꿈을 꾸는 유저들의 손을 통해 세세한 설명과 함께 업로드되고 있다. 내가 만든 작품이 단순히 커뮤니티에서 추천을 100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품이 되어 전세계 유통망에 뿌려진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10000 투표를 넘겨서 리뷰 중인 작품들


레고는 유저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이 쿠소를 통해 현재까지 10종류의 유저 창작품이 상용화되었는데, 일본 유저가 만든 심해 탐사선 ‘신카이6500’, 게임 제작사에서 직접 참여해 만들어낸 ‘마인크래프트’, 백투더퓨처 팬들이 만든 ‘백투더퓨처 드로리안’ 외에도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 <빅뱅이론> 시리즈 등 다양한 종류와 스토리의 제품이 상용화되었다.

30주년 기념 고스트버스터즈 레고 시리즈
레고 아이디어(쿠소)를 통해 실제 제품화가 된 백투더퓨처 드로리안(haginara님)




왜 그들은 굳이 정해진 대로 하지 않고, 자꾸 직접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번 그 심리를 이해해보자.


사진의 스타크래프트 테란용 전함을 만든 바나님(http://vana.kr)은 만든 작품을 보관해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만들고 사진을 찍은 다음에는 다 해체한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지 결과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스타크래프트 배틀크루져(Vana님)

사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작업 방식이였다. 누가 프라모델을 만들고 나서 사진만 찍고 부수겠는가?


하지만 바나님은 구상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연구해보고 붙여보고 다시 옮겨보는 과정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결과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 프라모델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 보니 자신들이 피땀흘려 만든 걸 그냥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아마 그 분들도 비슷한 이유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레고의 제품군이 다양해 보이지만 또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라인업이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쪽이나 다소 폭력적인 영화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드래곤 볼>이라든지 <건담>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브릭인사이드에서 활동하시는 규타(http://blog.naver.com/gyuta97/ )님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레고의 건담 라인을 직접 만들어내서 이런 팬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는 로봇물의 대표적 두 작품인 건담과 에반게리온을 적절히 섞어낸 창작 레고로 로봇 마니아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은 작품들이다. 

로봇 최강자들의 조합, 에바건담 (규타님)

유투브(링크)에서 세부적인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외에도 SD건담, 애플 매킨토시 또는 직접 조종이 가능한 배트맨 텀블러 등 창의적이면서도 ‘덕’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작품들을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탄호이져님은 '레고 테크닉'을 기반으로 구동이 가능한 작품을 제작하는 레고 빌더이다. 


대학에서 기계과를 전공한 탄호이져님은 레고 테크닉으로 구현할 수 있는 ‘로봇’으로서의 창작물의 가능성을 보고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 중이다. 이 작품은 <터미네이터2>의 헌터킬러 탱크를 모티프로 만든 것으로 무한궤도를 이용해 리모콘 주행이 가능하며 팔과 머리 등도 모두 구동이 가능하다. 탄호이져님은 조이드와 건담에 깊게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직접 구동 체계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레고를 접하게 됐다고 한다.


프라모델을 만들고 디스플레이용으로 놔두면서 뭔가 아쉬움이 있었는데 어느 날 레고 사이트에서 8043이라는 중장비 포크레인 테크닉이 모터와 수신기를 달고 리모콘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이거다’ 싶어서 처음 연습 겸 9396목재 운반 트럭을 구매했고 대학 졸작 때  이것으로 친구들에게 기동 모형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향후 탄호이져님은 게임에 나오는 각종 기계류, 예를 들어 <메탈슬러그5>의 1탄 보스가 무한궤도를 들어서 곡예를 부리듯 전진하거나 점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것을 실제로 재현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탄호이져님의 역작, 터미네이터의 헌터킬러




해외에도 (당연히) 레고로 상상력을 구현해내는 수많은 덕후들이 존재한다.


닌텐도 64, 게임보이 등 다양한 게임 콘솔을 변신 로봇 형태의 레고로 구현해내서 해외 미디어에도 여러 번 소개된 뉴욕의 그래픽 디자이너 Baron Von Brunk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어떤 커스텀 파트도 사용되지 않고 오직 레고 부품으로만 만들었으며 완벽하게 변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레고와 게임을 즐겼던 그는 <젤다의 전설><록맨> 등의 게임 캐릭터를 주된 소재로 다룬다. 그러나 사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초대형 닌텐도 게임기 콘트롤러이다. 너비150cm에 달하는 이 콘트롤러는 놀랍게도 실제로 작동한다.

Baron의 엄청난 레고 콘트롤러! 실작동도 한다!
게임 <젤다의전설>의 한장면을 레고로 만든 작품  (Baron VonBrunk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3D 프린터를 레고로 구현한 사례도 있다. 


해외의 엔지니어인 Arthur Sacek은 마인드 스톰을 이용한 3D 절삭기를 제작했다. 아래의 유투브 영상을 보면 마인드스톰을 통해 프로그래밍된 레고 기기가 스폰지를 잘라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것도 레고의 일종이라니...레고는 정말 무한대로 변형이 가능한 도구!

그는 2005년도에 레고 절단기를 의뢰받아 만들었는데 이때 조금 더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볼 순 없을까 고민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됐다고 한다. 


3D 데이터를 NXT(레고 프로그래밍 브릭)에 옮기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으며 결국 텍스트 파일에서 맵을 입체적으로 읽어 들이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사진에서 레고로 만든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정교한 결과물을 감상하시라.

레고로 만든 3D 프린터로 제작된 작품들 (Arthur Sacek님)



사실 레고의 최고 장점을 하나만 꼽자면 뭐니뭐니 해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레고 블럭을 끼워 맞추는 법만 알면 작은 정원이든 거대한 항공모함이든 시간만 들이면 만들어낼 수 있다. 20년 만에 처음 잡는 것이라도 일단 이 마법의 블럭을 손에 쥐는 순간 과거의 풋풋한 추억과 함께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새로운 창작물에 대한 기대가 마음속을 가득 채워 버린다.


나이가 들고 어떤 취향을 갖더라도 언제든 만족시켜주는 장난감, 그것이 바로 레고가 아닐까? 마치 8비트 픽셀과 같이 직선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우리의 추억과 즐거움을 구현하는 레고, 세상은 계속 바뀌겠지만, 레고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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