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인기의 그녀를 알아보자
지난 회에서는 3000억원에 달하는 일본 캡슐토이 (가챠폰)의 전체 시장 상황에 대해 흝어 보았다.
그럼 이번에는 가챠폰 신세기의 신데렐라, '컵 위의 후치코'를 집중 분석해서 어떻게 이 아가씨가 캡슐 세상을 씹어 먹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일본 기업들이 기민하게 사업을 확장시켰는지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후치코양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잠깐 소개를 먼저 하고 가자.
"컵 위의 후치코 (コップのふち子)"라는 공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아가씨는 컵 위에 앉아 있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 무슨 기능이 있지 않냐고?
전혀 없다.
단순히 컵 위에 올려 놓고 사진 찍고 공유하라고 만들어 놓은 제품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품이 2012년 7월 발매 이후 2년만에 무려 700만개가 팔리는 광란의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가챠폰은 한 시리즈에 10만 개 팔리면 히트작으로 구분된다.
후치코양의 직업은 OL (오피스 레이디)로, 단정한 여사무원복을 입고 있는 참한 컨셉이다. 그런 그녀가 컵 위에 매달리려고 다리를 쩍벌리거나 물구나무 자세를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풋!' 하게 만드는 것이 후치코양의 반전 매력이다.
아, 사실 저런 자세가 웃기다기 보다는 천하의 기묘한 자세를 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그녀의 포커 페이스가 진짜 매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센스 있는 제작자는 힘들어 땀을 흘린다던지 하는 식상한 디자인을 영리하게 배제함으로서 색다른 후치코의 매력을 창조해냈다.
이 센스쟁이 제작사는 '키탄클럽 (기담 클럽)' 이라는 곳으로 불과 열 몇명되는 인원으로 100억대 매출을 만들어내는 강렬한 개성의 가챠폰 전문 제작사이다 (아래는 그들의 작품 중 일부)
후치코 이전에 그들은 <도게자 (* 무릎 꿇고 비는 자세)> 시리즈로 이미 300만개의 히트를 기록했고 후치코로 가챠폰 시장의 정점에 올랐다.
워낙 개성있고 창의적인 아이템을 많이 만들어내는지라 창립 10주년인 올해 12월에는 독점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회사를 단기간에 메이저급으로 키워준 후치코 전설의 시작은 다름 아닌 이 그림 한 장이였다고 한다.
후치코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2012년 7월.
이 이후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2015년 11월 현재까지 총 50종의 새로운 버젼이 등장했는데, 이 중에서 정규 시리즈는 겨우 4종 밖에 없다.
나머지는 컬러와 의상 변경, 콜라보 형태의 제품이며 개중에는 노멀한 것 부터 뇌에 직접 펀치를 날리는 듯한 아스트랄한 디자인까지 존재한다.
아스트랄하긴 하지만 아직 꽤 노멀한 느낌이다.
이...이쁘다...
자, 여기까지는 제법 귀엽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미 후치코가 아니긴 하다...
일본 엑스포 박람회 공원에 있는 조각상 '태양의 탑'도 컵 위에 올라간다.
시크릿 제품은 무려 작가 아저씨이다......
꽤 노멀한 콜라보. 세계적인 기업도 후치코의 폭풍적 인기를 피해갈 순 없었던 듯.
만화 <도로헤도로>에 나오는 공포의 만두 사나이 캐릭터도 컵 위에.
엽기적으로 생겼지만 몸매는 정감있다.
일본 마쵸 캐릭터의 대명사인 <고르고13>의 고르고도 컵 위에 올라가면 그냥 귀여운 아저씨일 뿐이다.
패션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한 오사카의 아주머니들도 컵 위에 올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오사카 아줌마' 버젼.
썬캡 쓰신 아주머니는 왠지 한국에서도 자주 뵙는 듯.
스타워즈 부활의 원년, 2015년을 기념해 우주 최강 아버님도 컵 위로.
이쯤 보면 '심쿵쿵쿵' 하신 분도 계실꺼고 여전히 이 폭발적인 인기를 이해하기 힘드신 분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 '키탄클럽' (제작사) 인터뷰를 통해 그 인기의 비결을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이들의 기획 방식이 독특하다. 시장 분석이 아니라 완전히 직관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왜냐하면 캡슐 토이의 구매에는 무엇보다 그 '찰나의 느낌'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되면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말하자면 개그맨 아이디어 회의 같은 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의사 결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이들은 '아주 창의적인 사람들'로만 10명 이하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매출액이 100억이 넘는 회사가 불과 10명이라니...이렇게 초심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다.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하는 것에 반해 '퀄리티' 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아무리 200엔 정도 하는 장난감이지만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사는 이상 개봉했을 때 조악한 물건이 들어 있는 경험은 절대 시키지 말자, 라는 원칙인 것이다.
마치 소인국 여직원 같은 '후치코'를 컵에 올려 놓고 찍은 사진은 현실적이면서도 묘하게 픽션적인 느낌을 주었고 이에 그녀의 무표정하면서 아크로바틱한 자세가 더해져서 "SNS로 공유하기 좋은 이미지"가 될 수 있었다.
또 컵의 종류와 후치코 버젼의 조합으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만들 수 있어 촬영자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릴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였다.
기존 캡슐토이가 대부분 수집욕을 지닌 남성층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면 후치코는 (노린 것은 아니지만) 여성층에게 강하게 어필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참고로 지금까지 약 700만개가 팔려나간 이 제품의 기획자는 처음 기획할 때 "한 2-3개 팔리다 말지 않을까요 ㅋㅋ" 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 기업들은 확실히 콜라보 능력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과 속도를 보여준다.
적절한 시점에서의 콜라보레이션은 컨텐츠 생명 연장에 큰 도움을 준다.
현재까지도 일본 내 모바일 게임 매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퍼즐앤 드래곤> 같은 경우는 DC 코믹스, 파이널판타지, 헬로키티, 덮밥체인점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의 콜라보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치코 역시 콜라보로 인한 화제성과 제품의 희소성을 통해서 끝없이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
그럼 이 버라이어티한 콜라보 제품을 몇 가지 소개하면서 이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