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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Jul 16. 2015

마법의 조립도구, 레고 #1 - 성장

폭풍 인기의 비결을 알아보자


나는 얼마전까지는 레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키덜트 관련 일을 할 때 검색 키워드에서 빠트리고도 모를 정도였으니... 가장 큰 이유는 건프라처럼 내가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였다. 


취향에 맞게 데칼을 붙인다던지, 도색을 한다던지의 요소가 없이 매뉴얼에 따라 작업하는 것이다 보니 ‘내 것’이라는 느낌이 약했기 때문이다. 완성품도 너무 ‘브릭’스러워서, 뭐랄까, 건프라가 플레이스테이션 (3D)이라면 레고는 슈퍼패미콤 (16bit 픽셀)같은 느낌?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레고를 경시했었다. 주변에서 조금씩 레고덕후들이 생기는 걸 보면서도 말이다.

마치 픽셀 그림같은 레고

자, 이게 얼마나 무식한 얘기였는지는 잠깐 접어두고 먼저 객관적으로 레고의 한국 시장에서 성장세를 살펴보자. 


발표 자료에 따르면 레고 코리아의 국내 매출은 2008년 201억원에서 2012년 1136억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대형 마트 내 매출은 주말 영업 제한 등으로 마트 전체 매출이 떨어졌음에도 80% 이상 뛰어올랐다.


매출이 1천억원이 넘는다는 것은 헤드폰 전체 매출과 맞먹는다는 얘기다. 이러다보니 총판에서 부탁해야 하는 다른 완구와는 달리 레고는 매장 운영자들이 ‘모셔가는’ 콘텐츠라고 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급격한 성장세와 높은 몸값을 받게 된 것일까? 이번 장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취미 도구인 레고의 인기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본격적으로 해결해보도록 하겠다.




 어린이 슈퍼 파월  ‘닌자고’ & '키마'


<닌자고>라고 들어보았는가? 아니라면 당신은 분명 어린이 채널을 한번도 안틀었거나 대형 마트보다 동네 슈퍼를 즐겨 이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바로 이 닌자 복면을 뒤집어쓴 레고. 스타워즈도 아니고 아이언맨도 아닌 이 녀석들이 몇년 새 전세계를 휩쓸어버린 무적의 닌자 군단 ‘닌자고’이다.

닌자고 제품군 중 하나

 미국에서 게임 회사를 다닐 때 장난감 매장에 가면 온통 이 ‘닌자고’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당시에 레고에도 크게 관심 없고 더군다나 어린이용 만화를 전면으로 내세운 상품인지라 나는 마치 뽀로로를 대하듯 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2011년 닌텐도 DS로 발매된 ‘LEGO Battles: Ninjago’ 게임이 글로벌 100만장을 넘기면서 (휴대용 기기로는 엄청난 판매량이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어린이의 마음을 꽉 쥐고 있는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배경 스토리를 짧게 흝어보자.


옛날 옛적에 4개의 황금 무기를 이용하는 스핀짓주 마스터를 통해 닌자고가 만들어졌다. 이 황금무기는 너무 강력해서 스핀짓주 마스터가 죽은 뒤 그의 두 아들이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형이 어둠의 힘에 정복 되어 이를 독점하려 한다. 형제 간의 전투에서 동생이 승리해 형은 지하 세계에 갇히게 된다. 동생인 마스터 우는 네 명의 닌자에게 스핀짓주를 가르쳐 형인 가마돈이 보내는 지하 세계의 군단에게 대항한다


그다지 신선할 것 없는 스토리이지만 여기서 핵심은 바로 이 ‘스핀짓주’이다. 


스핀 동작을 기본으로 하는 이 무술은 ‘닌자고’ 시리즈를 구매할 때 따라오는 ‘스피너’라는 회전 기구를 이용해 미니피규어 (* 레고 캐릭터)를 대결 시키는 배경이 된다. 이와 더불어 동봉되는 ‘배틀 카드’라고 하는 수집형 카드 역시 닌자고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분들은 금방 ‘똑똑하군!’ 싶으셨을 것이다. 어린 시절 88 팽이부터 최근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까지, 이 팽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어린이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마성의 콘텐츠 중 하나이다. 

탑블레이드 팽이의 전세계 매출은 1조원을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전세계에서 250억장 팔린 전무후무한 극강 카드 게임 ‘유희왕’의 ‘카드 배틀’ 컨셉을 도입했으니 어린이들의 열광할 만한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이것과 유희왕을 퓨전시킨 그야말로 메가톤급 지갑 브레이커

이렇게 쌓인 화약고에 불을 붙여준 것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2011년 말부터 티비에서 방영된 ‘닌자고’ 애니메이션은 ‘뽀로로’를 졸업한 남자아이들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으며 부모님들을 완구 매장으로 이끌었다. 


완구업체 손오공이 거액을 투자하면서 까지 ‘탑 블레이드’ 애니메이션과 완구를 같이 제작한 것을 보더라도 완구를 염두에 둔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2012년 10~12월 레고 판매 분포 (출처: 다나와)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10~12월 간의 다나와 (최저가 쇼핑 사이트) 판매량에서는 ‘닌자고’가 62%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면 이런 효과가 분명해진다.


최근에는 ‘키마 (CHIMA, 치마가 아니다)라는 라인이 ‘닌자고’의 인기를 이어받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역시 판타지물임에도동양의 ‘기 (気-Chi)’라는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레고의 제품군을 보면 꽤나 서구권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면 이미 헐리우드처럼 글로벌한 테이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 

국내 레고 시장의 급성장세에는 키덜트 문화의 성장도 한 몫하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이러한 저연령층 컨텐츠가 그 핵심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키덜트 아빠 최적의 피난처 


 ‘닌자고’의 인기는 가공할 만하나, 그것이 레고 인기 상승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레고의 폭발적 성장에는 성인 마니아층의 확대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어른들은 왜 애들 장난감같은 알록달록한 브릭 완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먼저 레고의 성인 주소비층인 30대 남자들의 생활을 조금 들여다보자. 


인생에서 덕질이 흔들리는 몇 가지 고비가 오는데 그 중 하나는 ‘결혼’이다. 


냉장고를 좀 큰걸로 바꿨으면 싶은 아내를 아랑곳하지 않고 피규어를 사모으는 남편들...매서운 갈굼에 추풍낙엽 떨어지듯 결국 덕심을 떨군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 정도 시련은 슬기롭게 무찌르는 용감무쌍한 덕들이 많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1. 맞벌이일 경우 결혼하면서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2. 시간이 좀 지나면 부부가 같이 할 것이 필요해거지나  3. 부부 간의 취미 존중 거국적 합의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기를 낳으면? 

출처 : LEGOLAND Discovery Centre Manchester

안타깝게도 수많은 덕들이 이 시련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마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군입대 같은 것이 바로 ‘출산’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속편하게 헤드폰 끼고 자신만의 세계를 탐험할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고, 프라모델을 하던 사람은 신나와 스프레이 냄새라는 화학 무기를 애기 앞에서 살포할 수 없어지면서 잠정 은퇴를 결심하기도 한다. 그나마 피규어 콜렉터들은 나은 편이나 넉넉한 형편이 아닐 경우 결국 ‘자금 압박’이라는 또다른 복병이 존재한다.

아저씨의 인생살이를 함축한 그림...

그러나 이렇게 한동안 갓난아기에 메여 살던 마니아 가슴 속에는 애기가 조금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는 연령대, 즉 5세 정도가 될 때부터 스물스물 덕심의 꽃이 다시 피기 시작한다. 왜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때 본인의 덕질 욕구도 만족하고 아이도 즐거우면서 와이프도 덜 눈치주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 ‘레고’다. 


우선 레고는  ABS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틸렌)이라는 인체에 무해한 재료를 쓰고 있어 유독성 부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접착제나 도료 등도 필요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어진 대로만 따라간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많은 경우 챕터 형태로 나누어 놓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딸이 옆에서 각자 만들면서 합체 시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아빠와 아들처럼..레고 캠퍼밴 (메롱쟁이님)
요 정도 난이도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만들어 멋지게 장식해놓을 수 있다. (레고 75013 움바란 MHC)

‘친구같은 아빠’를 뜻하는 ‘프렌디(Friendy)’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아이와 놀아주는, 혹은 놀 줄 아는 아빠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레고’는 덕심을 가진 아빠들의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었다. 본인이 덕이던 아니던 아빠가 되면 아이들에게 레고 하나 정도는 어차피 사준다. 여기에 묻어 와이프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조립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게 해주는 키덜트의 도피처, 그것이 바로 레고이다.





 영화 재밌게 보셨으면 레고 하나 가시죠? 


한국의 키덜트 시장은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3>,<‘판타스틱4> 그리고 2008년의 <아이언맨>과 <다크나이트>를 기폭제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본 문화와 달리 어른들도 ‘나 이거 좋아해’라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중적인 서브컬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덜트 산업을 구해준 레고영웅들

헐리우드 영화의 파급력과 매력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레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을 통한 라이센스 제품을 만들어 왔다. 1999년의 <스타워즈>의 ‘포드레이서’를 시작으로 <인디아나 존스> <배트맨> <해리포터> <캐리비언의 해적> <반지의 제왕> 등 굵직한 영화들과의 제휴는 레고를 일반 대중에게 까지 어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볼트모트도 탐낼만한 레고 해리포터

피규어의 매력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실물로서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인데,  레고는 이러한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여기에 스스로의 장점인 ‘만드는 재미’까지 녹여냈다. 생각해보시라, 그 멋진 <캐리비언의 해적>의 블랙펄을 직접 만들어 방에 장식해 놓는 즐거움을. 서두에 ‘레고를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던 나이지만 솔직히 7784번 배트모빌을 보고는 갖고 싶다는 욕망이 용솟음 쳤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이 레고의 전략은 매력적이다. 

레고에 문외한이던 나도 한 눈에 반해버린 레고 7784번 배트모빌 (Vana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작’ 


앞서 과거 레고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로 ‘너무 매뉴얼대로만 만들어야 한다’ 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철저한 무식에서 나온 소리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레고의 궁극적 재미는 바로 ‘창작’에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창작 레고’라는 것은 다양한 부품을 이용해 자신 만의 레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레고의 접합 방식이 동일하다 보니 원하는 모양, 원하는 색깔로 커스터마이즈가 손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에 10만원을 호가하는 레고 제품을 부품 하나 구하자고 살 순 없는 노릇. 또 막상 이거다 싶어서 구했는데 생각과  다를 경우의 지갑 찢어지는 허탈감...그러나 안심하시라. 이런 예상 가능한 문제들은 모두 레고의 공식 채널과 비공식 채널을 통해 상당한 해결책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브릭인사이드’의 올리브님 창작 작품 “책마을”
레고 퍼시픽림. 정말 별의별걸 다 만들 수 있다 (제작자 = OliveSeon)

레고에서 공식으로 제공하는 LDD (LEGO Digital Designer)라는 툴은 컴퓨터 상에서 미리 원하는 브릭을 써서 레고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외에도 비공식으로 잘 만들어진 툴도 몇몇 존재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작업을 해본 뒤에 부품 판매 사이트에서 필요한 부품을 그대로 구매하면 그만이다. 

레고 LDD로 이렇게 미리 작업해 볼 수 있다. e-편한세상....

구매가 가능한 사이트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하비링크’라는 곳인데 여기서는 각종 부품을 형태 별로 정리해서 판매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풍부한 수량으로 레고 매니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www.hobbylink.co.kr). 


이 밖에도 브릭나라, 토이아제, 튜브앤스터드에서 각종 부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비링크 등의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부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최근의 넥슨의 김정주 회장이 인수한 ‘브릭링크’라는 레고 거래 사이트가 유명하다  (www.bricklink.com). 


부품 뿐 아니라 단종된 한정판, 개인의 커스텀 레고까지 레고에 관련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라고 보면 된다.  2013년 10월 현재 7,394개의 스토어가 2억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실 해외에는 레고 공식 오프라인 스토어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벌크 제품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아직 공식으로 운영하는 스토어는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특정 사이트와 해외 구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창작 레고에 관해서는 추후 좀 더 상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레고는 장사를 참 잘한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움직이고 어떤 요소들이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거기에 참여해서 생산을 하도록 적절한 도구들을 제공할 줄도 안다.


또 어린이층과 어른층이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지, 어디가 접점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장난감도 이렇게 넓은 층을 오랫동안 매료 시키진 못했다. 20년 전에 한 번 조립해본 사람이 레고를 다시 잡아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정말 간단한 룰과 그것을 통한 수많은 가능성, 레고가 50년이 지나도 지금까지 사랑 받는 무병장수의 비결이다.


다음 회에서는 레고의 종류를 좀 더 심도있게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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