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아니 시발, 어떻게 하지"
나는 입이 거친편이다. 욕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 점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고민을 한참하다가
"아니, 시발" 이 단어 하나면 무대포의 원동력이 된다.
어제 누군가와 밥을 먹었다가 썰을 듣기를 원해서 해주었다. 이 사람은 정말 편견이 없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학부 학벌이 사회에 나가니 "아!" 하고 떨어지는 거기에서 멈추다보니 왠지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면 인생이 많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한 대학원 입학인지도 몰랐다.
패션을 공부한 내가 뜬금없이 상경계열을 진학하기 위해서 선수과목을 듣고 본과를 입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공부랑 담을 쌓은 나였기에 영어도 그닥 별로라 영어도 조건부 입학으로 안된다는거 빡빡우겼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기기와 여기저기 도움청하는건 잘하는거 같다.
20살때 이모가 선물로 사주셨던 남인숙 작가의
" 여자의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라는 책을 읽고, 나의 인생이 달라졌달까. 원래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희망이 싹이 되었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본디 가진 재능이 그렇게 좋지 않으면 그냥 악바리로 살던가 아니면 여기저기 애걸복걸 도움이라도 요청을 해야하는거 아닐까 정말 너 할 수 있겠냐는 사람들 만류에 20대의 패기로 질러버렸다.
그리고 영어를 3학기만에 패스하고 (남들 2학기만에 끝낸다.) 선수과목을 끝내고 본과를 시작한 첫 학기에 학고를 맞아버렸다.
미국에서 학생비자는 학고 두번 뜨면 쫒겨난다. 아, 그때의 간절함이란 이게 정말 하고싶어서 할 수 있는게 있고 할 수 있어서 하는게 따로 있다는걸 통감했다.
그래도 쪽팔리게 이대로 한국엔 갈 수 없었다. 하지 말라는 부모님한테 큰소리 떵떵 치고 하겠다고 우긴 유학길이 아니던가. 거기다 나 좋아 죽겠다는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갈갈이 찢어진 20대 여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내가 졸업장이라도 하나 가지고 한국에 돌아갈꺼야
일단 무릎꿇었다. 학장님 교수님 행정실 다 찾아가서 제발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온갖 불쌍한척을 다했다. 공황장애에 걸려서 집중을 못한다 제발 졸업하고 싶다 도와 달라
나를 불쌍히 봐주신 실비우 교수님 지금도 무릎 꿇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담배 중에서도 길게 나온 담배를 학교 한쪽 그늘에서 피우시던 분이셨는데, 심지어 교수님이 보충수업까지 해주셨다.
참, 20대는 민폐의 아이콘이였다.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 (진짜 똑똑한 친구였다.) 내 숙제도 많이 도와주었던 루시, 성격도 정말 좋은 친구였는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편이다. 내 실로 자신의 능력은 미흡하기 짝이 없지만.., 주위의 도움을 받아 매일을 생활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니던가.
내일 새로 준비하는 창업 경진 대회에서도 도움을 받아 입상의 저 언저리 끝인 5등이라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자료 정리를 하러 회사에 출근했다.
또, 귀인을 만나 이번 고비도 넘어 갈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