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거짓과 진실 그리고 양심
청문회聽聞會는 말 그대로 어떤 문제에 대하여 듣고 또 듣는 자리다. 묻고 듣는 것이 아닌, 듣고 듣는 장이다. 청聽과 문聞이 모두 '듣는다'는 뜻인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간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증인들에게 들은 말은 세 가지뿐이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없다.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며 참 답답했고, 증인들의 뻔뻔함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감춘 추악한 비밀보다,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가슴속에 든 양심에 칼을 들이미는 모습이 나는 더 인상 깊었다.
유시민 작가는 <썰전>에서 청문회의 증인들이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러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청문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 수사권이 없는 의원들의 질의에 증인들은 순순히 입을 열지 않는다. 의혹을 제기하는 의원들은 때때로 그들의 감정과 양심에 호소하곤 한다. 김경진 의원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죽어서 천당에 못 갈 거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의원들이 그런 식으로 일갈하고 호소한들, 이미 마음속의 양심을 살해한 그들의 입을 열 수 있겠는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일말의 양심(만약 그런 게 남아있다면)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들이 증언과 제보를 비롯한 정황 증거를 두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미 뭔가 대책을 세워두었거나, 막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 거다. 그들이 입술이 부르트도록 사전에 입을 맞춰놓았을 가능성은 너무나 높다. 실제로 고영태는 친박계 의원과 최순실 측 증인이 태블릿 PC에 관한 위증을 모의했다고 증언했다.
둘째는 일단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수작이다. 그저 부정하고 감춘다면 모든 것이 잘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수작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에서 잘 먹혀왔다. 여태껏 기득권이 얽힌 범죄 행위들이 끝내 얼마나 흐지부지되고 무마되었는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그 순간만을 위증하고 부인하며, 이어질 방어책을 세우는 것은 대부분의 기득권 범죄자들이 가진 학습된 습관이다. 물론 이번에는 그들의 뜻대로 될지 의문이지만.
이번에 특검팀은 청문회 위증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것은 증인들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도 좀처럼 처벌받지 않는다는 거였다. 처벌의 내용도 국민들이 보기엔 솜방망이나 마찬가지다.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명백한 위증 행위에 대해 10년 이상 징역이나 1억 원 가까이 되는 벌금을 물린다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기 전에 최소한 망설이기라도 하지 않을까.
출석 거부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최순실은 어떤가. '공항 장애'라니, 정말 지켜보는 국민이 공황 장애에 걸릴 지경이다. 거의 문자 그대로 ‘증발’해버렸던 우병우 민정수석은 말할 것도 없다. 급기야는 네티즌들이 그의 행방을 찾기도 했다. 거기에 이영선, 윤전추 전 행정관은 연가라는 이유로 불출석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기함할 일이다. 정말 가지가지하고 있다. 동행명령장 따위는 양심도 없이 가뿐히 튕겨낸 그분들을 강제로 청문회 자리에 앉힐 수 없다는 게 애석할 따름이다.
국민들은 두 달째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국민들은 최선을 다해 대통령과 그 집단을 심판할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멍석은 이미 여덟 차례나 깔렸다. 높아져서 이제는 앉아 있으면 청와대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일 것 같다. 탄핵 가결로 이제 능선 하나는 넘었다고 본다. 아직 몇 차례의 청문회가 남았고, 이제 특검과 헌재가 걸음을 떼었다. 남은 능선은 이제 모두가 갈망하고 있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청문회가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역시나 법적인 한계점이 너무 많다. 그나마 하나둘씩 새로운 증언들이 터지고, 의혹들이 빛을 보는 것이 다행이다. 뻔뻔한 증인들에게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과감히 그들을 ‘양심 살해자’라고 부르고 싶다. 없는 양심에 더 이상 무엇을 빌겠나.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할 증거들이 어서 드러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