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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Mar 06. 2017

저출산 대책과 고스펙 여성

많이 배워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지난달 24일,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저출산 대책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대책안의 요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출산율이 낮은 것은 곧 혼인율의 감소 때문이다. 2) 통계를 미루어 보아 혼인율의 감소는 이른바 고스펙의 여성들이 자신보다 높은 지위(사회적, 경제적)의 남성과 결혼하려는 본능적인 심리에 기인한다. 3) 또한 여성들이 높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 적정한 혼인 시기를 놓치게 된다. 4) 그러므로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여성들의 지나친 스펙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더불어 고스펙의 여성들이 자신보다 학력과 소득이 낮은 배우자를 택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지난 26일 보직에서 사퇴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질의응답 게시판에는 아직도 분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니, 스펙을 쌓지 말고 자기 개발도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여러 언론에서도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만 전가한다는 비판과 함께, 단기적인 성과에만 치우친 현실성 없는 탁상 행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작년 가을에 소란을 일으켰던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한 유명 사립 대학의 교수가 강의에서 '서른 살 넘은 여자와 결혼하면 동메달, 대학원 가는 여자는 결혼 못한다'라는 식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던 적이 있다. 교내 대자보를 통해 해당 교수의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폭로되면서 한동안은 꽤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는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효孝에 관한 강의 내용이 여성 비하적인 측면으로 잘못 전해진 것이라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두 사건의 포인트는 맥락 상 비슷한 데가 있다. 일단은 여성을 결혼과 출산의 엄연한 '객체'로 보았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남녀를 막론하고 삶의 변곡점이 되는 선택 중 하나일 텐데, 여성도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율성을 배제한 것이라 본다. 그들이 거론한 '고스펙' 여성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원종욱 연구위원의 논리에 따른다면, 고스펙 여성들은 사회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계층이며 공익을 위해 마땅히 아이를 낳아야 하는 존재다. 아울러 교수의 발언을 놓고 본다면 나이 많은 고학력 미혼 여성들은 결혼 시장에서 뒤쳐진 패배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논지들은 성차별적인 논란을 야기함과 동시에, 젊은 세대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두 사건의 인물들을 완벽히 겹쳐 놓을 수는 없지만, 논지의 밑바탕이 된 생각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들의 눈에는 나이가 많고 고스펙인 여성들이 미혼이라는 게 일종의 개인의 '문제'처럼 비치는 것 같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동기를 생각하기보다는 뭔가 '문제'가 있는 여성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고스펙의 여성이 눈높이에 맞는 배우자를 찾지 못해 결혼을 꺼린다는 결론은 성급하다. 결혼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지극히 개인의 몫이지 국가와 타인이 함부로 간섭할 문제는 아니다. 더불어 고스펙을 쌓았다고 선뜻 결혼할 경제적인 여유를 가졌다는 것도 아니며, 출산과 양육에 쓰일 비용이 만만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무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이 이 같은 현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불평등한 젠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안타깝다. 결국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국가가 저출산 해결 방안이라고 내놓는 정책들이 실효성 없을 거라는 인식만 굳히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은 학문적 연구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현실을 세세히 관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저출산 대책은 이후에도 여성과 개인의 문제로만 입안될 것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곁가지로만 남게 될 것이다. 눈을 억지로 낮추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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