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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Nov 28. 2016

그 많던 꿈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누가 감히 청년들의 꿈을 말하는가

 나는 어릴 적에 공룡을 무척 좋아했다. 발음도 어려운 공룡의 이름들을 줄줄 외고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공룡을 소재로 한 만화도 그려서 반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했다(공룡들이 격투 대회를 벌인다는 내용인데, 싸울 때 ‘드래곤볼’처럼 ‘에네르기파’를 쏜다. 지금 떠올려도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 만한 설정이다). 그 시절엔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가 되고 싶었다. ‘쥐라기 공원’의 주인공같이 공룡의 발톱을 신분증처럼 바지춤에 넣고 다니길 꿈꿨다. 그 사람이 극 중에 입었던 하늘색 남방이 마음에 들어서, 매일 하늘색 남방만 해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고 공룡 박사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공룡 박사가 되려면 일단 수학을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6년 후 ‘수포자’의 신분으로 수능을 치렀다. 그 시절, 생각해보면 나의 꿈은 참 순수했다. 꿈의 조건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공룡을 좋아하면 고생물학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5년 전쯤인가. 내가 군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한 사립 초등학교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요즘 아이들의 꿈이 ‘삼성’에 입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순간 내 이마를 강타했다. 수많은 취업준비생들과 초등학생들의 꿈이 같았다. 어른과 아이가 같은 꿈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꿈은 ‘대기업 입사’로 대동 단결했다. 참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현실이다.

 그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미 수능을 치렀거나 몇 년 안에 치르고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아직도 삼성 입사를 꿈꾸고 있을까. 누가 아이들에게 그 꿈을 만들어 주었을까. 아마 아이들 자신은 아닐지 모른다. 삼성 입사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치고는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다.

 

 순수한 꿈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것에 흥미와 재능이 있는지 찾아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자라나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 청년으로 자라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현 사회는 묻는다. 꿈이 무엇이냐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관심 있는 분야는 없느냐고.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수많은 길 앞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한다. 꿈이 희미해진 젊은이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으려 노력한다. 일단은 꿈이고 뭐고 취직을 해서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꿈이 묘연해진 것은 그것을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대개의 장래 희망은 다양한 직업과 직종들을 직간접적(미디어든 주위 어른들이든)으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리 잡는다. 그중 자신의 흥미를 가장 당기는 일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한 꿈을 더 깊이 있게 경험하고 탐구하면서, 이를 이룰 가능성을 스스로 점치게 된다.

 하지만 현 사회를 감싸고 있는 교육 현실은 그런 기회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해당 분야에 대해 경험하고 탐구해볼 시간이 부족하다. 부모들을 비롯한 많은 어른들은 자녀의 꿈이 시대의 보편성과 기류에 맞지 않으면 덜컥 겁부터 집어먹는다. 꿈도 좋지만 우선 아이들은 어른들의 뜻에 따라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해야 하고, 학원과 과외를 돌며 부족한 교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런 일련의 톱니바퀴 같은 일상이 지속되면서 꿈은 그야말로 꿈처럼 희미해진다. 주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취업에 유리한 학과에 앞 다퉈 지원하고, 대학 생활을 거쳐 사회에 나갈 때쯤에야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느끼게 된다. 내가 딱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음을. 그 흔한 ‘내 어릴 적 꿈’도 하나 없었나 싶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남들도 다 비슷한 거 같다. 하는 수 있나, 먹고살려면 남들 하는 것처럼 해야 도태되지 않는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는 말을 듣는 것도 지겹고, 찾아보는 것도 막막하다. 그렇게 우리의 꿈은 점점 사치로 변해간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함부로 청년들에게 꿈꾸라 말하는가. 누군가는 꿈이 사라진 젊은이들을 타박하고 꿈꾸길 종용할지 모른다. 하나 젊은이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학창 시절에 어른들의 말을 잘 들은 것 밖에는 없다. 나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라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꿈을 한 번쯤 깊게 탐구해볼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그 꿈을 자신이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판단이 서면 그에 관련된 공부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타이르지 말자. 하다못해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 지 분명한 이유라도 갖게 해줘야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올해부터 중학교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위한 ‘자유학기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된다고 들었다. 과연 이 정부(이제는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는)에서 하는 일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다만 이제라도 관심 가져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훗날의 청년들이 꿈꾸지 못해 한탄하지 않도록 뭔가를 좀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정부는 모름지기 국민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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