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놈'에 대하여
흔히 ‘진상 손님’ 혹은 ‘손놈’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심에 똘똘 뭉쳐서 직원과 업주에 대한 배려는 사뿐히 ‘즈려밟으시’는 그런 사람들. 그렇지만 끝까지 자신을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 그런 경우를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런 사람을 봤다. 늦은 밤 몇몇 승객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거리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이 기사의 옆에 서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자신이 벨을 눌렀는데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벨은 울리지 않았다는 걸. 그 남자는 내 앞자리에 앉아있었고, 한참 고개를 품속에 쳐 박고 있었다. 나는 그 정류장 다음에 내려야 했기에, 그 정류장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벨을 누를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 남성은 졸다가 번뜩 깨어나 자신이 정류장을 지나친 것을 알았을 거다. 남자는 뻔뻔하게도 기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자신의 잘못을 기사에게 덮어 씌우려 했다. 결국 사과를 받아낸 그는 의기양양하면서도 분에 삭힌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는 왜 그랬을까? 기사에게 사과를 요구한 남자는, 정작 자신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다른 승객들은 생각하지 않은 걸까. 내 생각에 그는 화가 났을 것이다. 자신이 벨을 진짜로 눌렀든 안 눌렀든, 제 때 내리지 못한 것에 그저 짜증이 났을 거다. 그리고 그 화를 폭발시킬 어떤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이 고객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손가락을 내려찍을 수 있는 버스 기사였다. 직원은 손님이 겪은 불편을 해소할 의무가 있는 것이니까. 아마 그는 아직도 자신이 벨을 눌렀고,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합리화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낸 것을 자축하며, 자신의 사회적 권위가 ‘거기서’만큼은 번듯하게 세워져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앞에서는 그 또한 강자로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어도 어떤 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그 버스 기사가 자신의 고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다. 아니, 알았지만 그때만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고객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많은 경우 그들이 말하는 ‘고객’의 위치에 서는 편인데도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겸연쩍기만 하다. 고객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통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을 오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은 순간 자신의 위치가 격상되었다고 착각해, 눈앞에 있는 직원을 ‘아랫것’으로 보고 함부로 부리려 한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세간의 화젯거리가 된 것이 꽤 되었지만, 아직도 그런 사례들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어제만 해도 품질 보증이 지난 전화기의 환불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화를 못 이겨 전화기를 집어던진 한 고객님이 계셨다. 그는 전화기를 직원의 얼굴에 내다 꽂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었을까. 그는 고객님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자신이 무법자 내지는 권력자가 된 것처럼 느꼈던 걸까.
서비스 센터의 상담원이든, 여느 카페의 종업원이든 직원들은 참 고맙도록 친절하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직원들은 기업이나 업주에 의해 업장을 찾는 손님들을 친절히 응대하도록 지시받는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말은 그들 사이에서 친절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강조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기업과 업주가 친절한 응대를 기본으로 삼는 것은 스스로의 평판을 높이려는 시도이고, 무엇보다 상품과 서비스를 잘 팔기 위한 하나의 사업전략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다정한 태도로 손님을 대하는 것은 감정을 소모하는 노동이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친절한 미소가 돈을 벌기 위한 가식 일지는 모르나, 그래도 손님으로서는 그 수고를 인정하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아무튼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놈’들은 그런 것에 대해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요즘엔 함부로 침을 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에 배려와 감사로 답하지 못하고, 그들을 약자로 치부하며 고객으로서의 권위만을 세우려 한다. 결국 그런 ‘손놈’들에게 인격적인 손상을 받는 사람은 애꿎은 직원들이다. 친절 응대를 지시하는 기업과 고객으로서의 헛된 권위만을 누리려는 이들 사이에 끼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을 마땅히 보호해야 할 기업은 좋은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몇 달 전, 한 음식점의 업주가 종업원들에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글귀가 프린팅 된 유니폼을 입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유니폼이 사용된 이후, 종업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는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유니폼의 글귀를 읽은 손님들이 의식적으로 행동을 조심하고, 종업원들의 입장에 동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고생하며 돈 버는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그랬었다. 그들을 이용해 비겁한 권위를 세우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