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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Nov 29. 2016

당신들의 올바른 역사

이 분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다

 “국가가 만든 단 하나의 교과서로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이 허울 좋은 주장이 등장한 지 일 년여가 흘렀다. 상상도 못 하였던 국정 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는 지금. 정부에서는 ‘국정교과서 철회’라는 말을 철회하며 국민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새로이 쓰일(솔직히 쓰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내용들이 현실화되었다. 거기에 종래의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는 그들의 주장처럼, 이제야 공개된 집필진은 ‘우편향’되었다. 점입가경으로 집필진이 쓴 초고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거의’ 새로 다시 썼다는(알만하다..) 제보도 나왔다. 

 국민들과 불통해왔던 이 정부가 ‘강행’과 ‘철회’로 점철된 정부라는 것은 매 순간 느끼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시국에 국정교과서를 결단코 강행하겠다는 당신들. 참으로 대단들 하십니다그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국정 교과서는 준비 단계부터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집필진과 집필 과정을 공개하기 곤란하다는 정부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교과서에 무슨 짓을 해놓으려고 그렇게 감추고 또 감추려 하는 걸까. 결국엔 많은 의문점과 검증 요구는 깡그리 무시되었고, 정부는 자신들의 명목만 들이밀며 편찬 작업을 밀어붙였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역사란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국가의 어떤 황금기를 놓고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그 시대는 ‘천국’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지옥’ 일 수도 있다. 국정화 추진 세력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간의 서술이 치우쳤다는 구실로 균형 잡힌 교과서를 주장했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이 집필진부터가 우파계 인사로 메워진 것이 확인됐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틀려먹었다는 거다. 균형 없는 사람들이 균형 있는 역사를 쓰겠다는 말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사실 국가가 직접 역사 교과서를 편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은 그분의 아버지가 수십 년 전 본격적으로 철의 정권을 구축할 당시에 이루어졌다. 독재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강조(요)하고 자신의 치적을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실을 요량으로 교과서의 편찬을 지시했다(물론 나는 그가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전부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가 전후 한국의 낙후된 모습을 바꾼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안엔 뚜렷한 명암도 명료히 존재한다). 철의 정권이 막을 내린 후에도 역사 교과서는 30년 간 국가의 손에 써지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로 검정 교과서로의 전환기를 가진다. 그리고 금번 정부가 들어서며, 그들은 다시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거센 반대 여론에도 그들은 왜 단 하나의 역사를 관철하려 하는 걸까. 덧붙여 그들이 역사 교과서를 몸소 쓰려는 이유는 대체 뭘까. 

 

 대한민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나라다. 근현대를 지나며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전쟁의 상처를 닦아내어 피폐했던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고통이 따랐다. 일제강점기 당시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 후엔 독재의 폭력에 사로잡혀 봉건국가로 회귀하려는 나라를 막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를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국가 발전의 눈부신 성과를 더 기억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학생들에게 마냥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대통령은 금년 광복절 축사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 단어는 그분에게 불편했다. 그분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거북했다. 그 단어는 결국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자 분노였다. 더불어 그녀의 아버지가 애써 이룩한 대한민국의 절망의 단면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그 자체만을 타박했을 뿐, 왜 불만을 갖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녀와 그들이 펴낸 교과서의 목적이 이런 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앞으로 세상에 나올 젊은이들이 기득권이 움켜쥔 이 나라와 정부에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이렇게 가르칠지 모른다. ‘몇몇 사람들이 피를 흘리긴 했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은 위대한 성공을 이뤘고 그럼으로써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에 사는 국민은 열심히 노력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불만을 품는 것은 좋지 않다!’ 물론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어쨌든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의 훌륭한 면을 특히 강조하려는 의도는 확실해 보인다.   


 매주 전국에서 수많은 촛불들이 타오르고 있다. 이런 시국에도 꿋꿋이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가령 영화 절정부에 주인공의 손에 처단될 악당이 ‘이것만은 주고 가겠다!’하며 주인공의 손등에 기어이 칼을 꽂는 모양새 같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기어이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란, 당신들이 ‘원하는’ 올바른 역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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