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는 것에 관하여
나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아서 다정하고 살가운 사람이 좋았다. 누군들 그런 사람이 싫겠나 하겠지만 이러한 취향은 좀 더 자라서 이성을 보는 취향에도 여실히 적용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무살이 넘어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고 아끼던 이성들은 전부 다정하고 살가운 이여서 그들 중엔 연이 끊겨도 내 인생에서 만난 ‘쓰레기’로 전락한 적이 없었다. 주변 지인들 마저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와 연이 끝난 이후에도 ‘그래도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었다’라고 말 할, 누가 봐도 나에겐 잘했던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주변 친구나 지인들이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자신이 연락하고 있는 썸남이나 남자친구와의 대화를 보여주거나 겪었던 에피소드를 쏟아내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은지 물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은 나 자체가 겁이 많고 상처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을 두려워 해서 직설적으로 말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뭐든 다 맞춰주어야 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곁에 두지 않는 편이다. 학창시절 때는 그런 친구가 무리에 있다면 매일 학교에서 마주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웬만하면 그들의 행동에 맞춰주며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곤 했는데, 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그런 친구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 사귀는 이들도 그런 이들은 곁에 두지 않는 편이다.
이러한 성향은 이성을 볼 때 더욱 심해지곤 하는데, 나는 외모적으로 내 취향에 맞아서 첫눈에 반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그 사람을 바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을 지속적으로 지켜본다. 그의 어떠한 면이 내게 호감으로 작용하여 내 마음에 노크를 한다면 문을 열지는 않고 자그마한 구멍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계속 주시하는 거다. 나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투, 표정, 행동 등 자그마한 것까지 전부 끊임 없이 보는 편이다. 또 타인이 그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그제서야 문을 조금 열고 보는 편이다. 그 문을 연 이후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보통 그 문을 열 정도의 사람은 내가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후엔 내 마음을 다 열어 호감을 있는대로 다 갖다가 보여주곤 했다. 물론 이렇게 재고 잰다해도 가끔은 이상한 사람을 맞닥뜨리곤 하지만, 그래도 내 경계심으로 어느 정도는 상처 줄 것 같은 사람을 미리 멀리한다. 그래서 난 이뤄지는 사랑의 확률은 아주 적고 희박하지만 내가 만났던 이들 중에선 소위 쓰레기라고 결론이 나는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엔 더 좋은 누군가를 또 기다리게 되는 그런 패턴의 반복이랄까.
가끔 연애 관련 고민상담 사연이나 주변 지인들을 보면 저게 연애를 하는 건지 싸우고 화를 내기 위해 사귀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그들의 말만 들으면 저게 사랑을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한 연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힘든 연애를 겨우 끝내고 새로운 연애를 해도 마치 전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것 마냥 똑같은 부분에서 싸우고 또 힘들어 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만나는 이성들의 성향이 비슷하다는 게 문제였는데, 그들이 만나는 이성은 자신의 애인에게도 막말을 하고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었다.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말을 하면 그들은 내게 ‘착하고 다정하고 내게 맞춰주기만 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며 ‘자기 취향은 원래 나쁜남자’라는 철없는 대답을 했다. 어릴 적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십대 중반에 들어서고 주변 친구들이 점점 결혼을 하기 시작하면서 오고 가는 대화 중 결혼, 출산, 육아가 현실적으로 와 닿기 시작하는 지금은 여전히 그런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걱정된다.
재고 재어봐도, 다정하고 살갑게 대하기에 마음을 내어주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주 많은데. 이런 세상에서 애초부터 내게 상처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택한다는 건 정말 안타깝다. 나보다 타인이나 다른 것을 우선시하고, 무시하고, 연락이 툭하면 두절되고, 말로 상처주고, 그로 인해 우는 새벽이 늘어만 가는데 여전히 그 연을 붙잡고서 평생을 함께 할 결혼이란 길까지 생각하다니. 어렸을 땐 뜯어 말리고 싶어서 쓴소리도 해보고 단호하게 그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내버려둔다. 어떠한 새벽을 보내든 그것은 본인이 이어가고 있는 힘겨움이기에. 내가 뭐라고 그들이 선택한 그 미래를 방해할 권리가 없기에. 그런 새벽을 지새울걸 본인도 알면서 택할만한, 나는 모르는 이유가 있으려니 하며 그저 신경을 끊는다.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래에 뻔히 보이는 힘겨운 새벽을 조금은 덜 힘들게 지새웠으면 하는 마음 뿐. 그리고 그 새벽 속 울면서 투정 섞인 하소연을 늘어놓을 대상이 굳이 내가 되지 않았음 하고 생각할 뿐. 이미 나는 그 힘겨운 새벽을 맞이하지 않게 열렬히 말리고 말렸으니. 나의 새벽 단잠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