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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

장기근속자가 든든한 기둥이 아니라 썩은 뿌리였다면?

by 다람

장기 근속한 사람들이 정말 회사의 기둥일까?

오래 다닐 수록 좋은가? 정말 그런가?


나는 아주 작은 소규모(5-6명)로 일을 시작해서 나중에는 내가 '고인물' 혹은 '살아있는 역사책' 으로 존재했던 적도 있고, 10년쯤 된 회사에서 일하며 6-7년 근속한 사람들과 일해보기도 했다.


최근에 지인들과 얘기나누다가 이 주제에 유난히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름의 결론은, 오래 다닌다고 다 기둥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근속자의 여러 효과.


1. 배경 파악
- 이 기능이 왜 만들어졌는 지 배경을 들을 수 있고, 남들이 모르거나 잊기 쉬운 영향을 짚어줄 수 있다.
� 히스토리를 아는 게, 정답을 아는 것일까?

정의한 혹은 발견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높은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려는 게 PM/PO들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특정 기능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려고 할 때는 항상 맥락을 알아야 한다. 장기근속자들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A고객사가 그걸 요청해서 B 기능을 만들었는데 계약이 이러저러해졌고...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해 가지 않던 게 일견 이해가는 경우가 많다. 배경을 다 파악한 뒤, 1번 기능은 이렇게 옮기고 2번 문제는 이렇게 개선하고 보완책으로 3번 기능을 변경하자 등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 그래도 A 고객사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에요. 굳이 이렇게 안 고쳐도 되고 제가 말한 이유가 있어서 이럴 수 밖에 없어요' 등의 답이 돌아오거나, 여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해보지 않고 하는 말이거나, '귀찮은데 왜 일을 만들어요' 를 곱게 포장한 말이다.

변화에 방어적이고 위험/도전을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짙다.


2. 조직 문화
- 평화를 지키다가 조직 문화를 곪게 하는, 단점을 강화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 하던 방식이 다 최선의 방식일까?

특정 인물의 유해한 행동/말투/표정 혹은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회의의 주제/형식/주기 등 나아지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이 어느 회사에나 있을 것이다. 조금씩 고치려고 설득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실험적으로 진행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된 사람들은 성장/시도/발전에 큰 욕심이 없다.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평화주의자로써,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조직 문화는 나아지지 않는다. A 를 바꾸면 B 를 바꿔야 한다길래 B도 내가 바꾸겠다고 해도 그래봤자 근본적으로 안바뀌고 그럼 C 같은 부작용이 있을테니 헛수고 하지 말자고 한다. 시도는 배움이고, 실패는 성공의 자양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던 방식을 고수한다. 더 이상 더 나아지려는 노력도 힘이 빠진다.


3. 분위기
- 무던하고 불만없는 성향이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 IT 스타트업에서 무던하기만 해도 될까?

장기근속자들은 대부분 갈등을 잘 일으키지 않고, 무던하고 불평 불만이 적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 갈등을 만들어도 슥- 덮거나, 이 일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으면 적임자를 잘 찾아내기도 한다. 또한 갈등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계 허브망으로써 미움사지 않고 대화도 잘 한다.


다만, 변화에 회의적이고 일에 있어서 수동적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새로운 걸 먼저 제안하지도 않는다. 내가 주로 다녔던 곳은들은 IT 업계의 스타트업이었다. 내가 기대한 스타트업은 변화, 혁신, 성장을 쫓는 조직이었다. 그들은 성장이 정체되어 있거나, 동기가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리텐션 보다는 리뉴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장기근속자들의 안정성과 무던함이 빛을 발할 때가 있지만 조직에는 '새로운 기술 흡수력' 혹은 '적극적인 성장 추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한국 스타트업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스타트업도 어느 정도 고착화, 관료주의화가 되고 있다고 느낀다. 이는 조직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 지인들이 이직하면 그 곳의 '고인물'들에 대해 놀라운, 다양한 썰을 들려준다. 내가 '고인물'이었을 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회사 성장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툭하면 그거 해봤자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을까? 혹은 언젠가 나도 내가 아는 걸 얘기하느라 좋은 제안을 놓치는 사람이었을까? 되돌아보기도 했다. 누군가의 눈에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이직을 하게 되면서 내 눈에도 '고인물'들의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인다. 조직에는 '성장'도 '안정'도 필요하다. 그러니 스타트업 대표 혹은 임원진이라면 근속에만 힘 쓸 게 아니라, 쇄신에도 힘써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신규 입사자가 자기 검열을 덜했으면, 이 글을 읽는 고인물이 자기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리텐션 못지 않게 리뉴얼 에 신경쓰자.


우리 회사를 오래 지키고 있었던 그들이 든든한 기둥이자 주춧돌이 아니라, 성장을 막고 있는 두터운 벽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갉아먹고 있는 썩은 뿌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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