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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금 Jun 09. 2021

있기만 해

작별인사

"In life, we never lose friends, We only learn who the true ones are."




고등학교 3학년 짝이 되면서 가까워진.

숙취와 함께하는 직장인의 출근길 같은 입시 피로로더러워진 아침 0교시의 기분을 공유한.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며

대학 생활보다 카페 일에 더 몰두했고

나중에 커피 유학을 갈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전공을 의상디자인에서 영문학으로 바꾼.

<오만과 편견>과 <스펀지밥>의 뚱이를 좋아한.

안경은 고동색 아니면 검정색 뿔테로만 쓰고

핸드폰은 곧 죽어도 모토로라만 쓰던.

때마다 내게 시즌 한정 스타벅스 텀블러를 선물하고

때마다 내게 바디샵 제품이나 다이어리를 요구한.

열아홉에 찍은 졸업사진 속에도 있고

스물아홉에 찍은 내 결혼식 사진 속에도 있는.


열아홉이던 우리가 스물아홉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보낸 해가 있을까.


서른 되던 해 어느 날부터 문득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일 주소, 이제 없다는 번호.

구글과 SNS에서 찾아도 보이지 않는 너의 갖가지.


찾으면 찾을수록 무서워서

네가 먼저 연락해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10년이 넘도록 전화번호도 바꾼 적 없는데

멍청한 그때 그 녀석은 자기를 잊지 못해

번호를 안 바꾼 줄 알더라.


너와 함께 노닥거리던 서울 그 동네에 난 더 없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냥 있기만 해.

어디라도 있기만.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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