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오랜 동료분들과 회식을 하다가 그분들을 몽땅 집으로 데리고 오신 밤이었다. 평소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는데. 방에서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거실로 나갔다. 으레 어른이 집에 오면 하듯 동료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나의 뒤통수에 술기운 오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공부 잘한다고 했지? 너는 검사가 되어라."
"그래 사법고시 봐서 꼭 검사 해야지."
나는 술 취한 아저씨들의 오지랖이겠거니 하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자다 깬 애한테 갑자기 검사가 돼라니.
그 이후에 알게 된 바로는 아버지가 일하는 부처의 고위 공무원은 대개 현직 검사이거나 검사 출신이란다. 아버지와 동료분들은 사회생활 근 30년 간 자기보다 열 살 쯤은 어린 검사에게 "결재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부하 노릇한 것이 내심 서러웠던 것이다. 어디 검사뿐이었겠나. 일하면서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자존심 굽혔을 일이 얼마나 수두룩 했을까.
언젠가 가본 아버지의 일터는 번듯한 관공서 건물 중간층의 햇볕 잘 드는 자리였다. 아버지가 공무원인 덕에 우리 가족에게 IMF는 남의 이야기였고, 아버지도 당신 본인의 직업에 꽤나 자부심을 갖고 계시다.
그런 아버지에게도 술과 동료의 힘을 빌어야만 어린 아들에게 내보일 수 있었던 흉터가 있었다. 얼마나 지위가 높든, 겉보기에 번듯한 일을 하고 있든, 노동이란 것에서 사람의 마음은 이런저런 생채기를 얻게 되는구나 싶다. 내색만 안 하는 것이지.
아버지로 산다는 건 아마 그런 거겠구나, 하고 아주 어렴풋이 짐작해봤던 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