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학교에서 희망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6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격주로 수채화 및 영문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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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수채화 그림은 작고 쉬운 그림들이라 큰 기대는 안 했고, 내 그림에 예쁜 영문 캘리가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아 영문 캘리를 배우고 싶었고, 이사 와서 아는 지인들이 없어 엄마들을 사귀며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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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날. 많지 않은 수강생에 선생님께서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바로 소문자 영문 쓰기 수업을 시작하셨고,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을 쓰기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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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영문필기체를 쓰다 보니 집중도도 높았고, 시간도 금방 갔지만 딱딱한 수업에 말없이 묵묵히 쓰기에만 집중하는 엄마들은 내 기대와는 완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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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은 어땠어? 엄마들은 많이 사귀었어?"
남편의 물음에 "그냥 말 한마디 없이 필기체만 열심히 쓰다 왔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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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재밌지만 조용한 똑같은 방식의 수업이 몇 회 더 이루어졌고 소문자를 다 익히고 나서야 수채화 수업에 들어갔다. 수채화는 딱딱한 캘리 수업에 비해 한결 가볍게 이루어졌고, 엄마들은 어느 정도 이제 얼굴도 익혔고,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은 몇 안 되었기에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쉬울 거라 생각했던 수채화는 의외로 어려웠고 배울게 많아서 더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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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지막 수업이 3번 남았을 때 소심한 나는 용기 내어 물었다. "시간 되시는 분들 차나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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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수강생 한분이 좋다고 해서 가까운 곳으로 가 빵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솔직히 저는 배우는 것보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이 수업 신청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네요."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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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막 웃으시며 "제가 쉬는 시간도 없이 너무 수업만 열심히 했죠? 입시 학원에서 가르쳤어서 그런지 그 시간 안에 다 끝낼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또 다들 너무 집중하셔서 얘기할 틈이 없더라고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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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선생님은 너무 열정적이셨고, 수강생들은 너무 열심히였던 수업이었다.
그다음 수업은 좀 더 부드러워진 분위기의 수업이었고, 끝나고 또 빵과 차 한잔으로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물론 선생님은 차를 마시면서도 그림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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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늘 마지막 수업을 하고, 끝나고 빵과 찬 한잔을 했다. 마지막 모인 인원은 선생님과 나 포함 수강생 셋.
마지막에서야 친해진 인원이다. 좀 더 빨리 친해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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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오늘 조금 up 되어 있다." 수업에 다녀온 날 보던 남편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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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수업이라 시원 섭섭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난 의외로 기분이 좋다. 이유가 뭘까?
끝일 거라 생각했던 분들과 일단 며칠 후 또 만남을 기약했고,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 덕분에 다시 그림이 좋아졌고, 빨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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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 생각 하나 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나란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림 수업은 끝났지만 나의 그림은 다시 시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