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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Oct 06. 2017

나를 기억해 쿠바 _Epilogue

서툰 첫 연애

'진짜 예술가들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전시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누가 예술가이고 아닌지의 경계를 구분 짓기는 어렵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중고 신인의 데뷔전을 치렀다고 표현했다. '예술가'라 불릴 아주 사소한 자격 하나를 갖춘 셈이다. 그런 기준 말고 그냥 우리가 아는 진짜 예술가들로 돌아오면, 즉 피카소, 카뮈, 폴 오스터, 빔 벤더스, 이상, 윤동주 이런 분들은 얼마나 독하게 자신을 밀어붙였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전시 오프닝 전 두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촬영 일을 하고 전시 준비에 필요한 여러 일들을 하느라 바쁜 것도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예민한 자기 자신을 상대하느라 잠을 설쳤다. 사실 나는 '느릿느릿', '대충대충'이 몸에 밴 사람이다. 대신에 할 때만 제대로. 그런데 35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경험.

작품으로 낼 사진을 선택하는 일이 너무 오래 걸렸다. 마지막 29점을 정해두고 그중 네 점을 빼야 했다. 모두가 다 아픈 손가락들. 늦은 밤, 고심끝에 하나를 빼 두고 잠이 들었다가 두 시간쯤 뒤에 전혀 다른 사진이 떠올라 밤새 보정작업을 한다. 새벽녘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 원점으로 돌아온 29점을 멍하니 보고 있다. 다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밤에 같은 짓을 반복.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고 마지막 작품 프린트를 넘기는 그 날까지 매일 그랬다. 한 편 행복하면서도 곧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극심한 수면부족으로 대낮에 운전하다 사고가 날 뻔도 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명진아. 적당히 하자. 제발.

몇 권의 책을 만들면서 글쓰기는 조금 타협이 됐는데, 사진은 자꾸만 고집을 부렸다.


오랜만에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했다. 가족도 친구도 조언은 해 줄 수 있지만 전적으로 나의 선택, 나의 생각이어야 했다. 오랜 시간 내 작업을 보아 온 친구 승렬이나 선생님 밑에 함께 있었던 전문가 정민이 형과의 의논이 큰 도움은 되었지만 마지막 결정은 결국 홀로 해야 했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되어 고독한 두 달을 지내다 프린트 업체에 갔다. 캐논에서 소개해 준 상당히 실력 있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작품을 보여드리고 종이를 정하면서 이야기했다. "제작비가 부족해서요, 무광택 중에 가장 저렴한 걸로 부탁드립니다." 실장님은 이런저런 샘플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조금 달랐다. "작가님 작품은 이 종이에 하시면 블랙이 좀 차갑게 나와요." 검은색이 무슨 차갑고 따뜻한 게 있느냐 하겠지만, 실장님의 그 말이 그렇게나 큰 위안이 되었다. 아. 이분이 내 마음을 정확히 느끼고 계시는구나. 비용은 걱정 말고 가장 잘 어울리는 종이를 택하라셨다. 그게 자신에게도 더 만족스런 일이라며. 우리는 늦은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수 없이 많은 샘플을 찍어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런 분도 치열하게 연마해 최선의 결과를 낳는 예술가라 생각한다.

비슷하게 액자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장인을 만났다. 김중만 선생님 스튜디오에 있을 때 선생님의 작품을 만들어주시던 업체였는데, 언젠가 내 전시를 하게 되면 꼭 이곳에 맡기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여기선 유리 없이 작품을 내는 무리수를 두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 쿠바 작품들은 스스로 반짝이면서 보기에 소박하고 묵은듯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유리를 덮지 않았다. 테두리도 그 분위기에 맞춰야 했고 그러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도록 만들었다. 2단으로 층을 지게 만들어 작품이 틀에서 약간 떠 있는듯하게 했다. 그러면 조명을 받아도 작품으로는 그림자가 들지 않았다. 이 선택을 위해 수없이 충무로를 오갔다. 이곳 사장님의 오랜 경험과 장인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두 아티스트를 보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

결코 길지 않은 준비기간 동안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걸 보면서 역시 프로들은 다르다 느꼈다. 확실히 자기만의 시선을 갖고 소화시켜서 정확한 색깔을 보여준다는 것. 누구도 아닌 김물길의 그림, 누구도 아닌 프롬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다녀와서의 작업시간이 필요한 두 아티스트와는 달리 현장에서의 작업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홀로 아바나에 다시 다녀왔다. 가지 않고 후회를 남길 바에는 다녀와서 현재까지의 한계를 마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먼 거리를 또 다녀왔다.  


여럿의 노력으로 전시는 아주 잘됐다. 공간은 훌륭했고, 작품은 아름다웠으며 찾아준 사람들 모두 기뻐해 주었다. 캐논 관계자는 갤러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전시 오프닝이라고 했다. 프롬의 인기와 김물길작가의 매력, 우리의 작품이 빚어낸 멋진 장면이었다. 이후 토크콘서트나 여행수다 녹음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었고, 매주 있는 도슨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왔다. 기업의 갤러리나 대형 전시장이 아닌 개인들의 전시가 이런 반향을 얻었다는 것은 나름의 성취가 있다.

한 없이 행복했다. 오프닝의 구름 같은 사람들 앞에 마주 섰을 때 숨 막히는 떨림을 느꼈다. TV, 팟캐스트, 강연 등등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한 지 5년이 지났는데 그 순간만큼은 속절없이 두근거렸다.

그 첫 만남 이후 22일 동안 매일이 설렘의 연속이었다.


처음 누군가를 사귀었던 15년 전에도

이토록 떨리는 마음은 아니었으리라.
오랜 시간 꿈꾸어오던 연인을 만났다.
약속한 시간만 허락되었고,
그 만남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어도 좋았다.
그저 좋았다.
늘 꿈만 꾸어온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난 느낌.
함께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그 아이를 보러 갔다.
자꾸만 만나고 싶고,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연애 같았다.
보고 또 보아도 좋았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 다 안아주고 싶었다.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신경이 온통 거기 쏠려있는 초보 연애.
조절에 서툰 첫 연애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었다.
투정 부리면 받아주고,

원하는 것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그저 그거면 되었다.

거기 숨만 쉬고 있어도 내게는 기쁨이 넘쳤다.


사람들은 너와 나를 섬광으로 기억할지언정

나는 여명으로, 아니 영원으로 기억하려 한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한 달이 지난 오늘에야 다시 나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해서 치러내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다시금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솔직히 나는 아직 예술가는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사진으로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려면 한참은 멀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 걸어가는 길을 두고서 예술을 논하고 싶다.

밤새워 작품을 고르고 고민하던 그 마음처럼 정성껏 나의 길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그런 삶 말이다.

영화 '타짜'에 수많은 명대사가 등장하지만 그중에 평경장의 죽음을 두고 아귀가 했던 말이 있다.


"그 양반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가는구먼."


예술가가 되지는 못한다면서 떠나는 그 길,

예술이 돼라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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