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해도 괜찮아
조금 당황했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아 왔는데도 이곳은 또 다른 현장이었다. 터전을 잃고 먼 길을 걸어와 어렵사리 정착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전에 보았던 인도의 불가촉 천민촌과도 달랐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원 퍼슈파티나트와는 더욱 거리가 멀었다. 분명 생기 넘치는 마을이었고 학교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심지어 물자가 없는 그 곳에서 때로 장이 열리기도 한다. 병원에서 보았던 슬픈 모습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배우 류진 형님은 아이들과 축구를 했고, 가져간 축구공 몇 개를 나눠줬다. 선물하는 과정이 사뭇 엄격했는데, 유니세프는 그것마저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은 후에야 학교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조금의 관심이나 이익이 더 가면 안되는 곳, 그것이 현장을 대하는 불문율이었다.
유니세프에서 제공하는 것 중 유일하게 특정인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있다. 무엇이든 따로 주면 안 될 그 분위기에서 허락된 특식(?)의 이름은 플럼피 넛(plumpy nut). 전 세계적으로 사망하는 영아의 30%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다. 이를 구하기 위해 개발된 긴급 구호식품인 플럼피넛은 90년대 말, 프랑스의 소아과 의사가 고칼로리로 잘 알려진 누텔라에서 착안해 개발했다. 수분이 적어 주변의 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고 2년 간 상하지 않으며 조리 과정 없이 바로 섭취 할 수 있다. 하루 두 세번 씩 일 주일만 먹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적의 구호식품이다. 가격도 우리 돈 5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그나마 유엔에서 관리하는 지역 아이들에게는 원활하게 공급되지만 그마저도 먹지 못해 생명을 잃는 아이들이 도처에 있다. 일반인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라 먹어볼 수는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소화불량이 오거나 심한 경우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단다. 누군가에겐 목숨같은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겐 부작용으로 돌아온다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대하려해도 괜시리 마음이 더 가고 더 잘해주고 싶은 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여럿이 있는데도 가끔 한 장이라도 더 찍고싶은 사람이 있다. 아이들 중에도 그렇다. 한 번 더 눈이 가고 그저 한 번 쓰다듬어주고 싶은 아이. 물론 그 정도는 된다. 그걸 또 아이들은 오히려 더 잘 느낀다. 하긴 동네 강아지도 저 이쁘다는 사람 알아보고 따르는 법인데.
그러다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예전 자원봉사를 위해 네팔의 어느 학교에 갔을 때 부모도 없고 체구도 작아 따돌림을 당하는 남매가 있었다.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보란듯이 잘해줬다. 몰래 초코바를 쥐어주기도 하고, 학교에만 전달하는 인화된 사진을 그 남매만 따로 만들어 준다거나 하는. 우리 앞에서나마 다른 아이들은 남매를 괴롭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두 아이의 반응이 데면데면 했는데, 헤어지는 당일 그 조그만 아이 둘이 서로 부여잡고선 펑펑 울었다. 미안하면서도 안도가 되었다. 무뚝뚝하고 수줍음 많은 아이들에게도 마음의 온기가 전해졌다는게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함께 지낸 시간동안 조금만 먼저 나눴으면 아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우리 사는 일상은 어떨까. 비단 아이들이나 난민촌에만 해당하는 일 일까? 학교나 직장, 그 외 어디서건 사람 사이에서 지내다보면 괜히 더 챙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쉽게도 그 마음이 서로 같지는 않다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겠지만 그 지점의 온도차가 너무 많이 나면 결국 의도치않게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된다. 이게 우리 삶의 아이러니.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내게 호의를 베풀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추억인데 내게는 마치 늘 있던 일처럼 기억의 어느 모퉁이에 흘리고 간다. 저장값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해도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정도는 알아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얼마 전 캐나다의 오로라를 촬영하기 위해 툰드라 지역인 옐로 나이프에 다녀왔다. 영하 30도 이하의 추운 밤 공기는 숨쉬는 것 마저도 어렵게 했다. 온통 무장을 하고 왼손에는 두꺼운 장갑을 꼈지만 오른 손은 카메라를 쥐어야 해서 얇은 가죽 장갑 하나만 꼈다. 대단히 오래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동상에 걸렸다. 군대에서도 걸려본 적 없는. 우리 체온은 37.5도, 뜨거운 것에 화상을 입는 온도는 45도부터. 채 10도도 차이 나지 않는다. 반대로 동상에 걸리려면 0도까지 떨어지고도 30도 만큼 더 추워져야 검게 물집이 잡힌다. 내가 너무 뜨겁게 다가가면 당신은 '앗 뜨거' 하겠지만, 당신이 아무리 차게 식어도 누군가는 더 오래 기다릴지 모른다. 뜨거운 것은 바로 놓을 수 있어도, 차가운 것은 내 체온으로 버틸 만큼 버텨 보는 것이겠지.
당신에게 내가 그토록 뜨거웠는데, 오래도록 따뜻했는데 왜 나에겐 그렇지 않느냐 원망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마음의 온도가 어찌 다 같을수있을까. 대신 열이 전도 되어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가 평균을 맞추듯 그렇게 살면 좋겠다. 다른 한쪽이 비슷한 온도가 될 때까지 더 견디고 온기를 나눠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먹어선 안될 고단백질도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원천이니까.
그러려면, 너무 큰 온도 차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어쩌면 그냥 미지근하게 사는 것도 방법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