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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Jun 07. 2019

큐레이터의 여행. 작업실방문기.시작

15년차 세라믹큐레이터와 함께 작업실을 엿보다

세라믹큐레이터, 두 아이 엄마, 스코어리더,

, 온라인갤러리 사장


나의 직업 타이틀은 특이하면서도 또 생업의 흐름을 따랐기에 평범하다.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고 첫 직장으로 국공립미술관을 찾다가

당시 많은 재원이 투입되고 있던 세라믹비엔날레를 실행하는 문화재단에 입사하게 되면서 지금 쓰려하는 “작업실 방문기”가 시작되었다.

20대의 의욕넘치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이자 초보운전자였던 나는 이제 막 출시된 네비게이션에 의지한 채 전국의 작업실을 찾아다녔다.

가마 등의 설비와 주재료인 흙의 원활한 공급이 필수인 도자작업실은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한국의 경우, 주로 지대가 저렴하고 교통이 용이하면서도 일손동원이 쉬운 수도권 농촌 마을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나는 유적을 답사하던 미술사학과 대학원생 때처럼 생활형 명소 구경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이후 미술관을 퇴사하고 나서 유네스코의 도예자문기구인 International Academy of Ceramics 에 큐레이터 회원으로 활동하며 2년에 한 번씩 세계각국의 이름난 세라믹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긴 여행을 하고 있으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참이다.


봄이면 산수유가 만발하는 작은 개울을 낀 마을에 있던 우윳빛 백자를 만드는 작업실, 야트막한 언덕에 소담히 전통가마를 지어놓고 남다른 카리스마로 물레를 차며 분청을 만드는 작가의 작업실,  각 분야 장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일하던 분업화된 방이 늘어선 작업장과 대형장작가마, 미술관까지 갖추고 두 세기를 호령했던 고려청자를 만들던 작업장, 지금은 중소기업급으로 성장한 한 작가의 청년시절 열정이 넘치던 허름한 여주 작업실, 홍대 철길 옆 반지하에 밴드연습실과 나란히 있었던 야망이 남다른 청년 작가의 자취방겸 작업실...지금은 작가의 성장 또는 폐업으로 사라진 곳도 있으나 대부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도자예술, 세라믹에서 작업실이 가진 비중은 매우 크다.

도자 Ceramic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해 인간의 힘겨운 노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있는 어느 요소하나 꾸밈없는 솔직함의 예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에서 구워지는 마지막 공정에서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명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양면성을 모두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자 작업실은 이 투명성, 인간과 물질의 영역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작업실의 입지와 내부배치는, 어떤 재료를 사용해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이 만들어지는 지를 반영한다. 또한 작가가 특히 집중하는 바, 예를 들면 도구 하나하나가 놓인 자리부터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든 작업실 특유의 분위기는 작가의 의식과 취향, 야망까지도 엿보게 한다.

작업실에서 내가 제일 감탄하는 곳은 작품구상과 설계를 하는 공간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고락을 함께한 각종 작업도구와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인 유약샘플이 일렬로 놓인 작업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또한 손님접대나 작가 개인 공간에 어떤 그릇을 사용하는 지는 본인작품 중 작가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바잉의 중요한 힌트가 된다.

이처럼 작업실의 모든 디테일 하나하나가 작가의 야망과 취향, 그리고 예술적인 고뇌까지를 보여주기에 큐레이터에게는 정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10여년간 나는 세라믹큐레이터로 한국, 중국, 대만, 유럽의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이 모든 정보와 매력의 덩어리인 작업장을 방문하여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업무상 이 작업실 여행의 여정은 계속될 예정이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아마 여기서 헤어나오기는 힘들 듯하다.


내가 작업실에서 만난 그들은 전시회나 컬렉션의 대상인 예술품의 제작자이자 업무상 동료일 뿐 아니라 내 인생의 의미를 더해주는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의 공간을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고 작업실에서 긴 이야기 끝에 작품을 선택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판매한다. 이 과정은 오브제에 함축된 의미를 읽어내어 적절한 형태로 예술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큐레이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큐레이터의 큰 보람이다.


좋은 작품에서는 아무런 설명없이도 작업실의 향기가 배어나오기 마련이다.

자연물 상태였던 재료와의 사투에서부터 예술가의 소소한 일상까지를 담은 이 작업실 이야기. 이제 그 귀중한 경험들을 이 공간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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