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고궁박물원 회화실 카스틸리오네의 그림 앞에서
"아니 이 작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가슴이 뛰었다.
18세기 청나라 황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이탈리아 화가 카스틸리오네라는 이름을 명제표에서 읽고 이 그림의 특이한 구조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 속 장면에 이끌려 인파 속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가 마주친 그 어떤 훌륭한 순간의 떨림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곳은 대만의 고궁박물원 회화실이었다.
두루마리로 길게 펼쳐진 화면에 만주족 병사들이 전투에 나가는 장면이 시간 순서대로 담겨있었다.
순차적으로 일어난 장면을 한 화면에 그린 전형적인 고대 아시아식 내러티브의 형식인데, 정교한 서양화 기법이 사용되다니 이상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특이함에 끌려 관광객 무리 속에서 발길을 멈췄다.
만주족 병사는 질주하는 말 위에서 확신에 찬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병사의 차림새, 목에 걸친 모피의 털이 흔들리는 듯한 세밀한 묘사에 능숙하게 바람을 가르는 속도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몇 미터나 되는 두루마리 말미에서는 이 병사는 앞서가는 한 사람을 창으로 찌르고 적의 시체와 함께 귀환하는데, 이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담담해 오싹하기까지 하다.
이 박물관에 있으니 분명히 중국 옛날 그림일진대,
종군기자의 사진처럼 전투의 현장을 스케치한 이 그림은 정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중국의 그림도,
영웅적인 장면을 과도하게 포장해 현실감이 떨어지는 서양 그림과도 현저히 다르다. 중세시대에서 불쑥 나타난 아이폰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이 작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가슴이 뛰었다.
18세기 청나라 황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카스틸리오네라는 것을 명제표에서 읽고 이 그림의 특이한 구조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여전히 이 장면에 이끌려 인파 속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가 마주친 그 어떤 훌륭한 순간의 떨림이 내게도 전달되었다.
십수 년 전에 미술사 강의에서 배운 카스틸리오네가 이렇게 훌륭한 화가였단 말인가.
나는 이런 순간을 찾아 비행기까지 타고 이 넓은 박물관에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근대덕후이다.
역사적으로는 근대로 이름 지어진 특정시대가 있지만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근대"란 시간을 초월한 다른 의미의 말이다. 내게 근대는 시대를 통틀어 아시아, 유럽 전역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이질적인 순간들을 말한다.
사막의 실크로드를 따라 혹은 티베트의 차마고도나 중국, 일본부터 고려, 터키를 지나는 도자기 수출경로를 따라, 서로에게 새로운 사람, 물건, 예술작품, 동물, 무덤들의 만남이 "근대"를 구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이런 문화 믹스 앤 매치가 집중되는 시대가 16세기 무렵부터 20세기 초까지이나 7세기 신라시대의 무덤에서도 사마르칸트 지역의 푸른 유리제품이 나오니 시대는 크게 상관없겠다.
근대의 흔한 날에는 각자의 문화권에서 바라본 모습이 투영되어 섬광같이 서로를 밝히는 짧은 만남이 연출된다.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기에 이질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불완전하기에 더 로맨틱한 기류가 흐른다. 나는 이 시대를 상상하면, 마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왠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독특한 설렘이 느껴진다.
1755년의 어느 날, 이러한 순간이 카스틸리오네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아시아 전통회화의 세계관 안에서 고전적인 비단 위에 만주족 병사의 전투장면을
생생한 서양화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는 근대시기의 역동성과 함께 한 예술가의 연륜으로 탄생된 정제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신선한 눈으로 신선한 주제를 바라볼 때 시너지가 나온다
우리는 원래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낯선 곳을 여행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