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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진 Aug 30. 2022

싫은 건 싫은 거야

"가위 바위 보!"

술래잡기를 하기 위해 딸과 가위바위보를 한다. 딸이 이기고 내가 졌다. 그렇다면 가위바위보에 진 내가 술래가 되어 딸을 쫓아다니는 게 일반적인 모습일 텐데, 우리 부녀는 그렇지 않다. 가위바위보를 이긴 딸이 술래가 되고, 내가 열심히 도망을 다닌다. 우리 집에서는 이긴 사람이 하고 싶은 포지션을 맡는 것이 룰이다. 가위바위보를 이겨서가 아니라, 딸이 술래를 하고 싶어 하니까 술래를 맡은 것이다.


자꾸만 술래를 자처하는 것이 궁금해서 딸에게 물어보았다.

"왜 술래 하는 걸 좋아해? 쫓아다니는 건 싫지 않아?"

그러자 딸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쫓기는 게 더 싫어서."



그렇지,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깨닫는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천 명의 주인공이 있고, 천 개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며 생각의 다양성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자평하는 편이면서도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술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상대방을 배려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쫓기는 것이 싫어서라는 생각은 더더욱 그렇다.


천성이 낙관적이고, 행동이 느린 편인 딸은 평소에도 쫓기는 것을 싫어한다. 시간에 쫓기는 것을 싫어해서 늦잠이라도 잔 날에는 급하게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밥은 어찌나 천천히 먹는지, 유치원을 포함하면 급식을 먹기 시작한 지 4년째인데 아직도 시간이 부족해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단다. 이런 딸이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쫓긴다는 것은 어쩌면 나로서는 공감하지 못할 수준의 스트레스인가 보다. 그래서 모두가 싫어하는 술래를, 본인은 차라리 쫓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손 들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남들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대부분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남이 되어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들의 생각과, 기분과, 행동을 제대로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내도 나도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벌레다. 얼핏 보면 둘 다 '벌레를 싫어한다'로 퉁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싫어하는 정도 역시 수백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는 눈 딱 감고 휴지를 둘둘 말아 벌레를 집어서 버릴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지만, 아내로서는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런 아내에게 '나라고 좋아서 잡는 줄 아냐, 넌 왜 그거 하나 못 잡냐, 아무리 싫어도 버리려면 잡아야지'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딸아, 아빠도 그렇단다. 아빠에게도 정말 싫은 것들이 있지. 하지만 아빠는 언제부턴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아무리 내가 싫어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좋다고 하면 적당히 좋은 척하고 넘기기 시작한 것 같아. 싫은 건 결국 싫은 거고, 세상 사람들 중 아빠 혼자 그걸 싫어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너는 지금처럼 당당히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해. 그런 널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 와중에는 분명 그런 널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아빠 역시 그중 한 명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렴.


오늘도 사랑한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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