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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Feb 05. 2020

무관하지 않다는 감각

[사적인 추천사]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골목을 떠도는 개와 고양이, 위험에 노출된 동물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유난히 자주 우는 타입이긴 하지만 동물로 인해 코끝이 시큰해진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TV 동물농장'과 '세나개', '고부해'를 심야 시간대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심심풀이 땅콩이나 귀여움의 시선으로 볼 수가 없다. 오키나와에서 돌고래쇼를 관람한 것이, 자신이 돌보는 길고양이의 안부를 지나치게 염려하던 친구를 조금은 의아하게 바라본 것이 뒤늦게 후회스럽다. 내 발치에서 발라당 배를 뒤집은 채 태연히 잠든 나의 고양이, 옹심이가 불러일으킨 일상의 변화는 이토록 간단치가 않다.


하루는 반려묘에 관해 다루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나는 샤워할 때 팟캐스트를 틀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하필 그날 주제가 죽음이었고 짐작대로 펑펑 대성통곡을 했다. 샤워기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수십 번 세수를 하고서야 간신히 욱신거리는 얼굴을 가라앉혔다. 대화는 이런 내용이었다. 현행법상 동물의 사체는 쓰레기종량제봉투에 넣어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에게 가족이 있다면 적절한 장례 절차를 통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경우라면 그러한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심지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면 어느 나무 아래에조차 묻을 수 없다는 것. 법이 그렇다는 것. 이 모든 처리와 편의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


나는 쓸데 없이, 그야말로 괜한 상상력을 발휘해 쓰레기종량제봉투 안 어떤 형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껏 동물의 죽음을 목격한 적 없는 나는 그것의 정확한 모습을 그려낼 수 없었다. 가볍고 무거운, 보드랍고 딱딱한, 따뜻하고 차가운.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 하나, 완벽하게 동그라미를 이루는 작고 사랑스러운 얼굴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빙하가 녹아 흘러 이룬 호수 같은 눈동자, 한바탕 뛰어논 뒤 발개진 코, 아프지 않게 손가락을 물곤 하는 송곳니. 기어코 나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안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웅크린 옹심이를 상상했다.


도서관에서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를 대출하며 나는 내가 아주 많이 울게 되리라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며칠에 걸쳐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은 훌쩍였고 어느 날은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울음이 터졌다. 정도는 달랐지만 슬픔의 크기는 결코 다르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와 개와 코끼리와 돌고래와 코알라가 옹심이로 보인다. 그리고 '삶'이라는 명사가 비단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살아 있다는 것. 그 명징함이 모든 핑계와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나는 무언가에 애정을 지니는 일이란 세상을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이해하겠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위치해 있는 그 지점뿐 아니라 연결된 배경까지 모두 받아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군이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장군이에 빗대어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중략) 나는 아기의 옹알이나 손짓, 종종거리를 비둘기의 몸짓, 길냥이의 신중한 걸음, 유유히 헤엄치는 연못의 물고기들이나 풀벌레들까지 장군이를 느끼듯 느꼈다. 이 경우 가장 큰 변화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p.65, 김금희,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장군이와 장군이에 대한 기억들'


그래도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 반려동물의 생김새와 행동을 공들여 묘사한 대목에서 나는 함께 행복했다. "일을 보고 나면 늘 중요한 의식처럼 뒷발로 흙을 파묻으며 춤추듯 하던" 장군이와 "둥글고 따뜻한 엉덩이의 곡선"을 가진 봉봉이와 "나갔다 돌아오면 귀를 젖히고 파들파들 떨며 오백원 동전 크기로 동그랗게 만 꼬리를 분주히 왔다갔다하던" 콩돌이와 "햇빛에 데워져서" 몸이 뜨거워진 탐이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별안간 "옹심아" 하고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 때면 네가 살아 있음을 새삼 사무치게 깨달았다. 그러면 너는 영문도 모른 채 조금은 귀찮은 표정으로 하품을 쩌억 하곤 하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안심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아마도 그건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일 것이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외 8명,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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