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 만 57세
요가 경력: 3년
성별: 남
그냥 회사 다니시는 남자가 이 동작이 가능하냐고요?네. 가능합니다.
원래 유연성을 타고 난 분이시냐고요?운동은 좋아하셨지만, 유연성은 보통 남자 분과 같았습니다.
보통 남자 분의 유연성은 어느 정도냐고요? 다 아시잖아요. 두 다리를 쭉 펴고 손이 발을 겨우 잡고 머리를 숙인정도.
중년이 넘은 남자가 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직 후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는 일만큼 두렵고 용기가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우리나라 문화로는 남자가 요가 수업을 시작하기는 손으로 호두 껍데기 깨기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요가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지 않는다면 내 틀어진 몸을 바로 잡고, 건강을 되찾는 맛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수업에 남자가 들어오면 여성들이 불편해하고, 남자 분들은 여자들의 불편한 눈치에 수업에 참여하는 일을 포기하고 맙니다.
왜 일까요?
미국, 인도에서 요가 수업을 참여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인도나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요가를 할 때 웃옷을 입지 않습니다. 여자들 역시 자신의 튀어나온 배를 가리려고 헐거운 티셔츠와 바지를 입지 않습니다. 물론, 문화의 차이입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동작에 집중하느냐 누가 무엇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지 못 할 정도로 수련 중엔 남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본인의 건강을 남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보다 조금 일찍 알아차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자 땀을 흘리며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은 멋있는 걸 넘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이 아름다움을 우리나라 H 기업 직장인 요가 수업을 맡은 이후로 느끼고 있습니다. 퇴근 후, 피곤함을 달래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쉽게 택하는 한 잔의 술과 안주의 유혹을 요가로 바꾼 열 명의 남자 분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3년 전 첫 수업이 끝난 날, 사진의 주인공이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요가를 처음 합니다. 처제가 요가를 한다는 말을 들어 요가를 알게 되었고, 처제가 보여 준 한 동작에 나도 저 동작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무척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요가를 하면 다리를 벌리고 가슴이 바닥에 닿는 동작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요.
“할 수 있으세요.”
그 분이 하고 싶어 하는 동작은 ‘우파비스타코나사나’, 우리나라 말로는 ‘박쥐 자세’라고 하는 이 자세는 여자들에게도 요가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이루고 싶어 하는 로망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세를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 이유는 제가 체험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머리감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세숫대야에 머리를 담그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리면 목부터 등줄기까지 타고 내려오는 찌릿함. 그 느낌이 싫어 머리 감는 걸 하루 이틀 미루다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머리에 천연 기름까지 겹쳐 ‘물개’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타난 뻣뻣한 몸 때문에 고등학교 때 무용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던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요가를 공부하면서도 많은 위기를 넘겼습니다. 유연성은 타고나는 것이지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까지 내리고 그만두려했으나, 요가를 땀흘려하고 마시는 차 한 잔의 행복감은 일시적인 해외여행이나 명품백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행복감이었습니다. 유연성은 유전이나 체질보다는 생활습관으로 인한 요인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계속 이어지는 수련을 통해 알아갔습니다.
그 분은 일이 끝나시면, 바로 요가실로 오십니다. 회식 참석도 요가를 하시고 참여하실 정도로 우선순위가 요가로 바꿨습니다. 그 분은 제게 가슴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그 중 두 개가 마음깊이 남아 지금 글로 나오고 있네요.
“스트레스를 받고 하루 업무를 끝내고, 아무 생각 없이 요가에 집중하고 땀을 흘리는 시간이 나를 살렸고 건강을 찾았습니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입니다.”
어느 날, 출장을 다녀오시는 길에 140KM로 달려오신 그 분은 제가 사고나 벌금을 우려하며 드린 말씀에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고는 주의했고 벌금은 돈으로 해결 할 수 있지만, 오늘의 수업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좀 밟았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고 느꼈습니다. 어려운 동작을 책자의 화보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건강과 몸이 조금 씩 변화하는 과정을 느끼고 그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 시간이 모여 건강과 몸이 바뀌고 유연성은 노력의 결실로 받는 선물이라는 것도요.
그 분은 지금 퇴직 후의 노후 준비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게 아니고, 열심히 요가를 하고 계십니다. 교회나 노인복지 시설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며, 본인의 건강 유지와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제2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그 분의 모습이 젊은이들의 첫 출발처럼 설레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분은 이마가 땅에 닿는 것까지 3개월, 가슴이 닿는 것까지는 매일매일 하는 기준으로 6개월이 걸렸습니다. 몸이 많이 굳으신 분의 경우 매일 수련하시면 4년 정도가 걸리더군요. 시간은 해도 안 해도 흘러갑니다. 그럼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