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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술 한잔 할까 Apr 27. 2017

[우리_술 한잔 할까?] 그대여, 우리 같이 마셔요.

누구보다도 전통주를 섹시하게 마시고 싶은 세 여자의 술 투어 '우술까'

[이화주 4종 비교시음]

봄은 순식간이다. 벚꽃이 잔뜩 흩날리고, 이제 봄이구나 싶으면 금세 떠나가 버린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모든 자연은 아름답지만, 유독 봄이 더 찬란한 건 찰나를 위해 더 처절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일 테지. 4월의 끝자락, 오늘도 봄은 꿈처럼 우리를 스쳐간다. 


이번 우술까 14편에서는 아름다운 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봄을 품고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을 다뤄보자, 봄에 어울리는 '꽃술'을 다뤄보자 등 하고 싶은 말도 참 많았다. 고심 끝에 결정한건 이화주, 이름에서부터 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화주(梨花酒) 4종 비교시음'을 준비해봤다.

배꽃

이화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빚어졌던 술이다. 이화, 즉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실제 술을 빚을 때, 배꽃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밀 누룩을 사용하는 여느 술과는 다르게 이화주는 누룩도 특별히 쌀로 만들고, 구멍떡 혹은 백설기로 술을 빚는다. 물을 적게 사용하여 요거트 같은 쫀득쫀득한 질감이다. 이화주는 특별한 안주 없이 그냥 떠먹기도 하고, 찬물에 타서 막걸리처럼 마시기도 한다. 

■ 비타민처럼 상큼한 '봇뜰' 이화주


패키지까지도 떠먹는 요거트 판박이인 이 제품은 4종의 이화주 중 가장 신맛이 돋보였던 '봇뜰' 이화주이다. 남양주에 위치한 '봇뜰'에서 안동 권씨 집안의 권옥련 장인이 빚어내는 제품으로, 권옥련 장인은 어머니께 가양주를 배워 집안 방식대로 첨가물 없이 우리 쌀, 누룩만으로 빚는다.

질감은 웬만한 요플레 보다 훨씬 진하고 묵직한 느낌이다. 단맛이 없는 편은 아니나, 원주 느낌의 씁쓸함과 강한 산미 덕분에 단맛이나 곡물향, 12도의 알코올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넋 놓고 퍼먹었다가는 금세 취하고 말아버릴 은근 위험한 녀석이다. 레모나처럼 상큼하기 때문에 식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는 것이 좋고, 누룩향이 적어 누룩향을 좋아 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봇뜰' 이화주를 좀더 맛있게 먹을 방법을 찾던 중 문득 떠오른 건 딸기잼이었다. 핥아 먹어야 할 것같은 은박의 패키지, 게다가 플레인 요거트가 생각나는 질감. 어쩐지 딸기잼을 섞으면 딸기씨가 톡톡 씹히는 딸기 요거트처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딸기 요거트를 섞으니 레모나를 연상케 할 만큼 강했던 신맛은 단맛으로 가려졌다. 신쏘는 쌀향과 함께 딸기 비스킷 맛이 난다며, 혼자 한잔을 다 비웠다. 


■ 부드러운 크림같은 '국순당' 이화주 


이 제품은 '국순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리술 복원 사업인 법고창신'에 의해 지난 2008년에 복원된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12.5도. 탄산에 의한 청량미나, 산미는 적지만 매우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 같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풍부한 과실향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아 여운을 남긴다. 시음했던 4종 중 가장 묽은 형태로, 수저로 떠먹을 필요 없이 후루룩 마실 수 있다.

어쩐지 일본 삿포로 여행때 먹어봤던 '네리자케'가 떠오른다. '네리자케'는 이화주만큼은 아니지만, 걸쭉한 형태다.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딴 박언니에게 물어보니, 찹쌀을 반죽해서 술덧을 거르지 않고, 멧돌에 갈아서 만들어서 그렇단다. 점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마를 넣기도 하고, 미음처럼  만들어서 마시는것이지 한국처럼 떠먹는 술은 아니다. 


'국순당' 이화주는  400ml와 700ml 두 가지 용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400ml는 유리병에 한지를 매칭하여 고즈넉한 느낌이고, 700ml는 도자기를 사용했다. 고급스러운 패키지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좋다. 


박언니의 추천에 따라 이 술에는 커피 리큐르인 깔루아를 섞었다. '국순당' 이화주가 깔루아를 만나니 깔루아밀크처럼 부드럽고, 꽃향기가 난다. 얼핏 카페라떼 혹은 커피우유와 비슷하다. 쌀 맛과 달달함의 조화 예전에 수제 이화주를 만들 당시의 맛과 거의 비슷한 맛이다. 깔루아가 들어가니 질감은 더 묽어졌다. 박언니는 예쁜 칵테일 잔에 옮겨 담고, 분위기를 잡으며 마셔도 좋겠단다.


■ 새콤달콤한 '술샘' 이화주 


4종 가운데 가장 맛의 조화가 좋다고 평가를 받은 제품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술샘'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화주로, 신맛·단맛·쌀맛이 모두 적당하게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알코올 도수는 4종 중 가장 낮은 8도. 새콤달콤한 맛과 녹진한 질감, 은은한 과실향이 난다. 4종중에서 맛이나, 질감에 있어 가장 요거트와 가깝다. 실제 시음 당시 신쏘는 파인애플 맛이 난다고 평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이 술은 쌀 알갱이가 그대로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오물오물 씹게 된다. 다른 이화주 보다 쌀향이나 맛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술샘 이화주에는 박언니가 직접 내린 에스프레스를 섞었다. 에스프레소의 신맛과 이화주 특유의 상큼함이 만나 신맛이 한층 강해졌다. 신맛으로 입안이 개운하면서도 커피 특유의 고소함은 은은하게 끝 맛을 장식해 더욱 다채로운 향을 풍긴다. 원두 특유의 풍미를 확실히 전달한다. 케냐 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느낌도 든다. 여기에 커피와의 찰떡궁합인 크래커를 콕 찍어 먹으니 기가 막힌 맛이 탄생했다. 이날 조합은 세 여자의 베스트로 꼽혔다. 


■ 개성 있는 막둥이, '예술' 이화주 '배꽃 필 무렵'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예술'에서 만든 이화주 '배꽃 필 무렵'은 4종중 가장 최근에 나온 막둥이다. 이날 시음했던 이화주 중에서는 특유의 개성 넘치는 맛으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일단 색은 은은한 노란빛이 감돈다. 이화주인지 모르고 봤다면, 치즈나 마요네즈로 착각할 정도이다. 질감 역시 생크림이나 그릭요거트처럼 흐르지 않고, 단단하다. 4종중에서는 가장 농축된 느낌이 든다. 

첫 한술을 떠서 먹자마자 든 느낌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한지 맛’이 난다고 하니 신쏘와 박언니 모두 깔깔깔 웃어대더라. 두 여자는 곧장 나의 저렴한 표현을 또 전문적으로 풀어냈다. 박언니는 잣 향이 느껴진다며, 정확하게는 견과류보다 백색 꽃 종류의 향이 난단다. 신맛이 전혀 없어 상큼하다기보다는 단맛과 고소한 향이 지배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느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알코올 도수는 무려 14도. 덕분에 알코올 향도 4종 중 가장 강하고, 적은 양으로도 취기가 오른다. 


패키지는 베스트 중에 하나. 태블릿PC만한 상자를 열어보면, 20ml씩 총 8개의 플라스틱 용기에 나눠 담겨 있다. 마카롱만한 아기자기한 사이즈로, 손바닥에 거뜬하게 올릴 수 있다. 여기에 바로 퍼먹을 수 있도록 일회용 수저도 함께 제공한다. 소비자를 위한 세심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예술 '배꽃 필 무렵'에 플레인 요거트. 이 조합은 내가 제일로 꼽았던 레시피다. 신맛이적은 '배꽃이 필 무렵'에 플레인 요거트와 적당량의 꿀을 섞으니 달달한 연유 맛이 난다. 나는 연신 맛있다고 칭찬을 하고 있는데, 두 여자는 절레절레. 단맛이 너무 강하다느니, 비율이 잘못된 것 같다느니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혹평이 이어졌다. 결국, 두 여자의 시음평은 '배꽃 필 무렵'은 그냥 그 자체로 먹는 것이 제일 베스트란다. 워낙에 개성도 있고, 특유의 향이 우아한 녀석이므로 아무것도 섞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더라. 

분명히 술을 잔뜩 먹었는데, 기분 탓인가? 마시지 않고 퍼먹었더니, 어째 술을 마신 것 같지가 않다. 이만하면 벌겋게 달아올랐어야 할 두 뺨도 멀쩡하다. 우리는 촬영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수다를 떨며, 이화주를 퍼먹었다. 창밖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꽃잎이 흩날리더라.  떨어지는 건 꽃잎인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고 말했더니, 신쏘의 한마디.


"장기자, 봄 타나봐!"


봄이 뭐 별거 있냐며, 남들 봄 타령에 시큰둥했던 나인데. 막상 떠나보내려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에라, 모르겠다. 뒤늦게 봄바람 난 마음, 이화주로 실컷 달래나줘야지.


<세 여자는 누구?>


장기자: 양조장 취재 몇 번 다녀온 거로 '나 술 좀 알아.' 폼 좀 잡다가 큰코다친 애송이 기자이다. 목표는 프로 애주가! 전통주 공부를 핑계로 두 여자를 살살 꼬셔 '우술까(우리_술 한잔 할까?)'를 기획, 신나게 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신쏘: 듣기에도 생소한 전통주 소믈리에이다. 맨날 전통주만 마실 것 같지만, 주량에 대해 물어보니 '맥주 다섯 잔'이라고 얘기하는 우리의 드링킹 요정. 단순히 술이 좋아 시작한 게 눈 떠보니 업으로 삼고 있다. 


박언니: 자타공인 애주가. 술 좋아하는 고주망태 집안에서 태어나 '난 절대 술은 안 마실 거야'라며 주문처럼 다짐했다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술이다. 느지막하게 열공모드에 돌입, 얼마 전에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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