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를 바꾸는 지속가능성: 비즈니스도 지속가능하고 싶다
"환경학 공부를 하고 마켓컬리에서 무슨 일을 해?"
석사 졸업 후 마켓컬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자 의문이자 공격(?)이 아닐까 싶다. 예능 PD로 일하다가 스웨덴으로 환경학 공부를 하러 갈 때에도 ”왜?”란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었는데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아마도 내가 환경 관련 NGO나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일할 것이라 예상한 듯싶다. ’환경공학’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환경학’, '지속가능성' 공부를 했다고 하면 보통 그 정도로 진로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테니까. 나 또한 환경학과 지속가능과학 석사를 졸업하면서 이제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내가 전공한 학문은 '환경학과 지속가능과학', 한국에서는 생소한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한 이 학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환경을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했던 공부의 핵심은 환경 문제를 단순히 자연환경의 파괴, 회복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 문제가 해당 사회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가지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다양한 사람들과 협의, 조율하는 데에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입장이 다른 여러 다양한 관점을 이해해야 했고, 스웨덴의 정부기관, 학술기관뿐 아니라 지역민들, 다양한 기업들과도 소통했다.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나가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성이 단순히 국가, 정부 수준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지역사회, 기업에서도 점점 더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석사 기간 동안 했던 프로젝트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스웨덴의 소규모 브루어리이자 맥주 브랜드인 'Brygghuset Finn'과 함께 진행한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안 구현에 대한 프로젝트였다. 그전에 했던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특정 지역, 특정 환경 문제에 대한 분석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브랜드와 회사를 좀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과제였다. 우리는 브랜드의 매니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사무실과 공장을 방문하였으며 숫자를 들여야 보고 계산을 해야 했다. 회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데에 꼭 필요한 것은 회사가 환경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에 기여를 하면서 동시에 이 회사가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데에 있다. 인도주의적 기능을 수행하는 NGO가 아닌,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기관이 아닌, 이익 창출이 필수 요소인 기업의 경우 경제성을 무시하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는 그 기업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와 시민들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다. 우리 학과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중 일부는 꽤나 강경한 환경운동가들이었고, 그러한 신념을 생활에서나 학생으로서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극단적이었다. 여행할 때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도시를 12시간에 걸쳐 기차를 타고 간다든지(심지어 가격도 비행기가 더 저렴하다), 철저한 비건의 삶을 중학교 때부터 무려 12년간 유지한다든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신념을 가진 친구들. 그렇기에 비즈니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기업의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이란 그들에게 일종의 '타협'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와 우리는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완전히 설득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서로 어느 정도의 이해와 공감을 쌓아나갔다.
Brygghuset Finn이라는 브랜드는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브루어리였다. 젊은 오너와 직원들은 맥주를 만들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친환경적이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여러 팀들은 다양한 방향성과 기획을 내놓았다. 태양광으로 브루어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방식, 오피스를 더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식, 그리고 내가 속한 팀에서 내놓은 맥주를 제조하고 남는 곡물 찌꺼기를 이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방식, 이 모든 것들은 기업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뿐더러 기업의 비용절감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생각했다. 환경을 위한 일들이 꼭 어떠한 '희생'과 '자선'에 의해서만 실행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전에 이야기했듯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브랜딩에 도움이 될 수도, 트렌디해질 수도, 결과적으로 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기업의 '자선'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식, 그 방식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지속가능한' 것일 테니까.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서론이 길었다. 나는 환경학 공부를 했지만, NGO에서 일하지도, 연구원에서 일하지도 않는다. 나의 첫 번째 선택지는 이커머스 스타트업인 마켓컬리였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일을 계획하고 기획한다. 최근에는 '올페이퍼 챌린지'라는 모든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프로젝트에서 협업하며 마켓컬리의 포장재 연구의 히스토리를 담은 숏다큐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은 '지속가능한 유통'에 대한 컨셉을 만들고 그 액션플랜을 기획하고 있다. PD로서의 경력을 살려 관련 콘텐츠들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도 한다. PD로 일했던 경력과 환경학 석사 공부를 했던 것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내게 생소한 분야이자, 그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유통'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우연인지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마켓컬리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기치로 내세우며 브랜딩과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그중 누가 진정으로 내실을 채우고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좋은 시작이자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야는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이후로 꽤나 답보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논할 때 단순히 '친환경', '사회환원'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 업에 맞는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단순히 기업 이윤의 몇 퍼센트를 떼어 사회 질서 유지와 자연환경 보호에 자선하기보다는 기업에서 하고 있는 업 자체가 사회와 환경을 위해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유통업에서,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그 대세의 흐름 속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찾아보고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아직은 유통업 초짜이지만, 열심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또한 유통 전문가가 아닌 환경학 공부를 했던 사람의 눈으로 비즈니스의 지속가능한 방향을 찾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 비즈니스의 지속가능한 방향, 이커머스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지만,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하며 친환경이 아닌 '필환경'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나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에서 정의하는 사람과 사회, 자연환경, 그리고 경제까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속이 꽉 찬 지속가능함, 그 '판타지'가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고 믿으며 한 기업의 일원으로 이를 실천할 방향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