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사전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우리의 감정과 기억이 깃든 곳이며, 매일매일 우리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의 안식처다." -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왜 감각으로 집을 읽어야 할까?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자주 평수와 가격, 기능과 효율성에만 매몰된다. "몇 평이에요?", "얼마에 샀어요?", "수납공간은 충분한가요?" 이런 질문들만 오고 간다. 하지만 진정한 집의 가치는 그곳에서 느끼는 감각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의 스펙이나 조건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설렘과 따뜻함, 편안함과 황홀함 때문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집을 대하는 태도, 내가 집에 있고 매일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집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각들이 있다면 집에 있는 것, 돌아오는 것이 즐거워진다. 집에 값지고 좋은 물건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물건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그것들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내가 집에서 하는 수많은 행위 자체가 내가 집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과학이 증명한 감각과 공간의 관계
인간은 공간을 통해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경험한다. 천장 높이가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자연광이 기분에 주는 변화, 색온도가 집중력에 미치는 효과 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는 추상적 사고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르는 반면, 천장이 낮은 공간에서는 집중력과 세부적 작업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집의 각 공간을 설계할 때 그 공간에서 주로 하게 될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돌프 아른하임의 공간 지각 이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공간을 단순히 기하학적 구조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의미를 담은 심리적 공간으로 경험한다. 같은 크기의 방이라도 창문의 위치, 조명의 성격, 가구의 배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각을 준다.
대화를 통해 발견한 8가지 집의 감각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나고 즐겁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를 위한 집을 만들고 싶은 건축주는 건축가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강요한다고 불평하고, 좋은 집을 설계하고 싶은 건축가는 건축주가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집을 말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는 살아온 경험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통방식의 문제이다.
필자는 일반 시민들과 건축 전문가들과 함께 10여 년간 300여 회의 나의 집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감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환경 심리학과 주거학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인간이 공간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크게 8가지 감각으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따뜻함 - 물리적 온도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포근함을 주는 공간감 (예/주방, 거실 등)
편안함 - 몸과 마음이 휴식할 수 있는 안식의 느낌을 가진 공간감 (예/안방, 침실 등)
은밀함 -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개인적 공간감 (예/서재, 작업실, 등)
내밀함 - 나를 비우고 채우는 성스러운 시간을 위한 공간감 (예/화장실, 욕실 등)
당당함 -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자부심의 공간감 (예/거실, 응접실 등)
황홀함 -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함을 경험하는 공간감 (예/음악실, 다례실 등)
설레임 -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감지하고 기대하는 공간감 (예/ 베란다, 발코니, 마당, 정원 등)
소중함 - 시간이 쌓이고 변화가 풍부해지는 가치를 지닌 공간감 (예/작은방, 아이방 등)
이런 감각을 가진 집이야말로 집을 집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기능적으로 완벽해도 이런 감각이 없다면 그곳은 단순한 '주거공간'일뿐, '집'이 되기는 어렵다.
감각과 기능의 조화
중요한 것은 감각과 기능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름답지만 불편한 집도, 편리하지만 차가운 집도 모두 좋은 집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주방의 경우 요리하기 편리한 시스템키친의 기능을 갖추면서도,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효율적인 동선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이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시선의 연결도 고려해야 한다.
욕실의 경우에도 청결하고 기능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어야 한다. 단순히 씻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정화의 역할도 해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8개의 장을 통해 당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각 감각이 어떤 공간과 연결되는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무엇인지
현재 내 집에서 부족한 감각은 무엇인지
작은 변화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실천 방법들
모든 감각이 완벽하게 갖춰진 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몇 가지라도 갖춘 집이라면, 그 집은 분명 특별한 곳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각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깃든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