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K'에 빠진 이유

로맨틱 모던의 시대-1

by 이재준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매력

최근 몇 년간 세계가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K-드라마, K-POP, K-뷰티, K-푸드까지. 한류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94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고,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로 이 영예를 안았다. BTS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연속으로 차지했고, 블랙핑크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묻게 된다. 왜 하필 한국일까? 왜 지금일까?


기존 설명들의 한계

지금까지 한류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었다. "정부의 문화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1999년부터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정책 지원을 받는 다른 나라들도 많은데, 왜 유독 한국 문화만이 이렇게 전 세계적 관심을 받을까?


"디지털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발달 때문이다"라는 분석도 있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들도 많다. 기술만으로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한국인이 콘텐츠를 잘 만들기 때문이다"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 창작진들의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인정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표면적인 설명에 그친다. 실력 있는 창작자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으니까.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답

이 모든 요소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진짜 답은 훨씬 깊은 곳에 있다.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에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조선왕조 건국 이후 지금까지 약 630년간, 우리는 한반도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고유한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전통가옥에서 시작된 우리의 공간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시련, 급속한 산업화의 격변, 아파트 시대의 변화를 거치며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해 왔다.


환경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공간은 우리의 행동 방식을 형성하고, 사고 패턴을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창조한다. 우리가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지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공간이 만든 한국적 특별함

우리에게는 다른 문화권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특성들이 있다. 이 특성들은 우리가 살아온 세 가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첫 번째 ‘마당에서 배운 개방성’이 있다. 마당은 우리 집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었다. 이 경험이 우리에게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되, 적절한 선은 지키는" 관계 맺기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지금도 우리는 외국인에게 자연스럽게 길을 알려주고, 이웃과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낯선 이를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방과 방 사이에서 터득한 유연성’이 있다. 창호지로 구분된 공간에서 우리는 "완전히 열지도, 완전히 닫지도 않는" 경계의 지혜를 배웠다. 빛은 통하게 하면서도 시선은 차단하고, 소리는 들리게 하면서도 프라이버시는 지키는 그런 절묘한 균형감. 이것이 현대에 와서 우리만의 유연한 소통 방식으로 발전했다.


세 번째 ‘바닥에서 체득한 평등성’이 있다. 온돌 바닥에서 모두가 같은 높이에 앉아 생활한 경험이 우리에게 수평적 관계 문화를 선물했다. 공간적 위계나 질서와 상관없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습관적인 평등함. 이것이 한국의 빠른 민주화와 참여적 정치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2020년이 보여준 우리 문화의 진화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한국인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적응력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WHO는 한국의 방역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지혜로운 거리두기 문화"를 꼽았다.


이는 하루아침에 나온 능력이 아니었다. 630년간 우리의 공간에서 습득한 개방성, 유연성, 평등성이 현대적으로 진화하며 우리만의 독특한 '거리 두기의 예술'을 완성한 결과였다. 가깝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연결되어 있지만 간섭하지 않으며, 함께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그런 미묘한 거리감 말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알 때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신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부족한 점만 찾으려 했고, 우리만의 특별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가 우리에게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매우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당, 방, 바닥의 경험. 이 세 가지가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낸 한국적 관계의 미학이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문화의 핵심이 되어 있다. K-드라마 속에 나타나는 따뜻한 인간관계, K-POP 스타들이 팬들과 만드는 친밀한 소통, 한국인들의 자연스러운 배려 문화.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우리가 살아온 공간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다.


이제 한국 문화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문화를 수입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를 말이다.


이 책은 그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가 너무나 몰랐던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 평범하다고 여겼던 일상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아내는 여행. 그리고 그 가치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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