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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ul 24. 2022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 출간을 앞두고

인생에서 고난은 느닷없이 다가온다.


아파트 게시판에 경로당이 다시 문을 연다는 공지가 붙었다. 새삼스러웠다. 경로당이 필요할 만큼 우리 아파트에도 많은 수의 노인이 살고 있었구나. 그럼 그 많은 노인들은 그동안 어디에서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지난 2년 동안 아파트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노년층 주민들을 잘 보지 못했다. 팬데믹 상황에도 아파트 놀이터에는 마스크를 쓴 채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근처 카페나 식당에는 조심스럽지만 친한 이들끼리 만남을 이어가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경로당이나 공원, 복지관 같은 노인들의 커뮤니티는 문이 굳게 닫혔다.      


외부와 차단된 채 혼자 집에 있는 노인들은 동료와 교류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고독했을 것이다. 무료함은 행복한 일상의 반대말 일지 모른다. 찾아오는 이가 없고, 갈 곳도 없는데 시간은 넘쳐흐른다면 그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누군가에겐 고난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020년 1월, 처음으로 온 가족이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갔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족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자주 떠나자고 말하며 짧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흘렀다. 가족 모두가 무탈하여 좌석에 나란히 앉을 수 있고 비행기 밖 하늘을 바라보며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 그래,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경로당 문이 열리면 아파트에서 사라졌던 노인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을 넘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스톱을 치고, 바둑을 두며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리고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며 까만 비닐봉지에 주전부리를 들고 가는 어느 어르신의 부산스러운 모습도 곧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소란스럽다며 툴툴거리는 대신, 여전하고 별것 없는 장면들이 귀해 보일 것이다.         


인생에서 고난은 느닷없이 다가온다. 고난이 찾아오면, 영원할 줄 알았던 존재와 가치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상실의 흔적은 얼굴과 몸, 기억에 남는다. 엄마와 나에게 찾아온 코로나19라는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런 글 따위는!     


이 고백이 나에게 도움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고, 공공기관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일하는 나의 경력에 흠이 되고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 것이라 믿었다.          


나의 다짐과 결심을 무너뜨리고 글을 쓰기로 작정한 데에는 분노의 감정이 불씨가 되었다. 사람들은 엄마를 하루아침에 마녀로 만들었고, 엄마는 억울함과 두려움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고 서럽게 울기도 하며 스스로와 나의 진을 빼고 있었다.     


처음엔 화난 감정을 글로 쏟아내려 했지만 바로 멈췄다. 그 글들은 나와 엄마의 상황을 성토하는 일기는 될 수 있어도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방향으로는 흘러가지 않을 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엄마는 2020년 12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엄마가 청춘과 중년을 지내며 40여 년을 살아온 터전에서, 나의 유년 시절 추억을 머금고 있는 동네에서 엄마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엄마는 기로에 서 있었다. 이 동네에서 버티며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낯선 곳으로 이주를 할 것인가. 생채기 난 마음과 후유증에 시달리는 몸에 좌절감을 덧씌울 것인가, 아니면 새살이 차오르도록 아파도 상처들을 마주할 것인가.      


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인 한 사람의 상실과 회복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름 모를 당신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한다면, 혹은 당신과 내가 늙는다면 언젠가는 만나야 할 절망과 희망 사이 그 어디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서 감추고 있던 질병과 노년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드러나게 하는 기폭제였을 뿐이다.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이기도 한 나의 글벗이 물었다. 내가 쓴 글들이 사람들에게 닿아 무엇으로 남기를 바라냐고. 그때는 제대로 말하지 못한 답을 여기에 남긴다.      


이 글들은 나의 엄마와 가족들이 제일 먼저 읽어줬으면 좋겠다. 우리의 긴 독백이자 함께 써 내려간 돌봄 일지이니 그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한다. 욕심을 조금 더 내어본다면, 코로나19란 거친 풍랑을 만나 잠깐이라도 외롭고 두려웠던 사람들에게 나의 문장들이 향하길 바란다. 자신이 탄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밤낮으로 노를 젓고 갑판 위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또 한 시절을 무사히 살아낸 보통의 사람들 말이다. 독자들이 찰나의 순간이라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고난이 느닷없이 다가오듯, 위안이 되고 기쁨을 주는 순간도 갑자기 찾아온다. 사랑하는 이와 느리게 걷다가 계절의 변화를 반가이 맞이하며 함께 살아가는 다정함을 느끼게 될 때, 느닷없이 충만한 하루를 맞는다.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팔 벌려 힘껏 안아 주도록 하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2년 8월 8일, 지난 2년 여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집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를 출간합니다.

나이 듦을 마주한 중년과 노년 여성의 심신 단련기!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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