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하루가 문 앞에 도착했어요!
무료한 오후, sns에 올라온 지인들의 소식을 보고 있자면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이 든다. 만나면 어색한 사이라도 sns에서는 간단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전할 수 있다. 세 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존재 중 한 명이지만 정작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경상도 남매 사이인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정답게 묻는 일이 쑥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동생이 요사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면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꼼꼼히 살핀다.
동생 sns의 단골 소재는 열세 살의 딸과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다. 이태리 식당을 운영하는 동생은 남들처럼 주말에 쉴 수가 없다. 평일 중 하루, 쉬는 날이 오면 딸과 데이트를 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열심히 놀아주려 애쓰는 티가 난다. 동생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는 또 다른 존재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다. 그중 ‘하루’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유난히 동생의 sns에 자주 등장하는데 둘 사이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동생을 끝까지 기다리다가 동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느샌가 마중 나와 동생을 반긴다. 동생이 잠들어 있으면 침대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와 동생 곁에 누워 있고, 집에서 늘 동생 주위를 맴돌며 애교를 부린다. ‘하루’는 그 이름처럼 동생의 하루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존재고 동생의 그날 기분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가족이다.
동생과 ‘하루’의 인연은 6년 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 오는 새벽, 가게를 정리하고 나오던 동생은 차 밑에서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 고양이는 찾을 수 없었다. 비를 흠뻑 맞아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던 고양이를 품에 안았고, 다음날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수의사는 살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라고 했다. 동생은 엄마 고양이에게도 버림받고 전문가마저 어차피 죽을 거라고 말하는 고양이의 운명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떠나길 바라며 이름을 ‘하루’로 지었다. 제일 비싼 초유 한 캔을 사서 ‘통을 다 비울 때까지만 살아주렴!’하며 기도했다. 그렇게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산 것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을 넘겼다. 이제 ‘하루’는 동생과 함께 여섯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하루’는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지금도 자주 병원 신세를 진다. 태어나자마자 길에서 시간을 보내서인지 면역력이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많이 약한 편이다. 얼마 전에도 큰 수술을 해야 해서 오랜 기간 입원을 했다. 동생과 올케, 조카는 돌아가며 매일 ‘하루’를 찾아갔다. 혹시라도 자신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할까 봐 아침, 저녁으로 병원을 방문해 ‘하루’를 안심시켰다. 또 한 번 큰 고비를 잘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하루’는 기운이 없어 축 처진 와중에도 눈길만은 동생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동생과 ‘하루’의 인연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 ‘하루’의 생명을 살린 것은 동생이지만 이후 동생의 일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하루’가 아닌가 싶다.
감히 짐작하자면, 조그마한 몸의 고양이를 품에 안고 새벽마다 초유를 먹이며 ‘하루, 단 하루만 더 살아라!’라고 간절히 소망하던 동생의 마음이 '하루'의 가슴에도 닿아 깊게 새겨진 게 아닐까. 그래서 고양이 ‘하루’는 일에 지쳐 돌아온 동생에게 ‘수고했어요!’라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힘을 내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라고 매일 속삭이듯 주문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과 ‘하루’는 그렇게 서로에게 새날이라는 기회를 선물하는, 다정한 사이다. sns 속 사진만 보아도 둘 사이가 애틋해 보여 누나인 내가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낼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