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찐팬이 전하는 실제 이야기
혹시 <기묘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넷플릭스의 대성공작 중 하나인 이 시리즈에는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익숙한 아이콘이 총집합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요소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학교의 '찌질이' 캐릭터 얘길 들겠습니다. 왜냐고요?
소년 스필버그도 어떤 면에선 찌질이였거든요.
기묘한 이야기 시즌2를 보신 분들은 에필로그의 무도회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셨더라도 이 장면은 기시감으로 가득하실 거예요. 왜냐면 프롬, 즉 무도회장에서 외면 받는 찌질이 캐릭터는 할리우드 틴의 대표적 아이콘 중 하나니까요. (더스틴 미안해)
찌질이와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즌 4의 농구부 주장 제이슨같은 사람이죠. 고등학교 유니폼을 늘상 걸치고 다니는 운동부 에이스로, 여친과 똘마니들은 필수, 성적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다 가진 자' 캐릭터입니다.
스필버그(이하 스감독)는 애리조나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문제는 소년 스필버그의 새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각박했다는 것입니다. Spielberg(스필버그)라는유대인식 이름을 두고 사람들은 Spiel Bug(스필 벌레)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파벨만스>에서 Fableman페이블맨을 Bagelman베이글맨으로 부르는 것은 이 경험에서 따온 듯 합니다).
그런데 소년 스필버그가 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 아시나요? 그는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을 자기 영화에 출연시켰습니다. 애리조나(피닉스)의 아르카디아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쟁영화 속에 양아치 한 명을 비행 중대장 역할로 나오게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새러토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파벨만스>에서 보듯이, 자기를 늘상 놀리던 아이를 개그의 대상으로 삼아 기록영화를 찍었지요. <파벨만스>에서는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컷 다음에 선탠을 즐기는 아이들 얼굴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지는 컷을 매치시켜, 마치 새똥이 아이들 얼굴에 떨어지는 것 같은 코미디를 시도한 스필버그의 유머감각을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부랑아들은 스필버그의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이나, 새똥을 맞은 개그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먹을 날리지 않았습니다. 애리조나에서 전쟁영화 촬영을 할 때, 스필버그는 여전히 양아치가 무섭게 느껴졌다고 회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상으로 자기 공포를 승화합니다. 카메라를 든 스필버그는 최약체가 아니라 엄연한 대장인 것입니다. <파벨만스>에서 날라리 채드가 스필버그의 비디오에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화는 스감독에게 '영화'란 자기 목소리와 같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또 그에게 영화란 공포를 이겨내는 힘이기도 했다는 것을요.
스필버그는 이유 모를 환상과 공포를 영화를 통해 해소하곤 했습니다. 1편에서 말한 ‘기차 이야기’도 그 맥락과 맞닿아 있습니다. <파벨만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마 미치는 스필버그가 기차를 망가뜨리려 하자 “이렇게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며 카메라를 듭니다. 즉 스필버그는 기차 충돌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걸 계속 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공포에 매료되었다고나 할까요?
지난 편에서 말씀드린 첫 단편 <Firelight>도 실은 '공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린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버지 아놀드와 함께… 캠핑을 떠났습니다. 어두컴컴한 밤, 아놀드가 아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은 바로 ‘유성우’였습니다.
“아버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수만 점의 빛이 십자형으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놀라움 이상으로 공포에 떨었다. 동시에 이런 환상을 유발한 원인에 대해 무척 궁금해졌다."
여기서 스필버그에게 'UFO' 또는 '외계인'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더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초기작 <미지와의 조우(1977)><E.T(1982)>는 물론이고 21세기 초의 <우주전쟁(2005)>에 이르기까지 외계인이라는 소재는 이 명감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가 외계인이란 소재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어릴 적의 시각적 충격도 한몫하겠지만, '외톨이'였던 소년 시절의 경험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창들의 회고에 따르면 나름의 블랙 유머도 충분히 갖추었던 열정적인 영화광 스필버그.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대체로 수줍고 조용한 축에 속했고, 캘리포니아에선 유대인이란 이유로 온갖 괴롭힘까지 다했으니 확실히 자기를 주류로 여기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외계인'과 같은 존재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E.T>의 또다른 외로운 소년 엘리엇이 지구 밖의 존재 E.T와 포옹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누구나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하여 시각적인 언어로 이를 전달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영화적인 표현을 마치 숨 쉬듯이 편안하게 하는 감독입니다. 스감독의 그런 고민은 각종 비주얼 효과와 기술이 가미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도 그러나나, 잔잔한 홈드라마 혹은 드라이한 정치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의 기교는 우리가 샤워하면서 노래할 때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익숙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감독의 아래 말을 다시 곱씹어 보고 싶습니다.
"내가 죽을만큼 두려워하는 한 가지는 바로, 관객이 내 영화를 보고 지루해하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조금 더 긴장감 있게, 더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방법을 숨쉬듯 고민하는 영화감독.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에게 '영화'란 본능에 가까웠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본능은 자신을 괴롭히는 부랑아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뻔뻔해 질 수 있게 만들지요. 영화가 바로 자신이 서 있을 자리라는 걸 깨달은 소년에게 무서운 건 없었을 겁니다.
다음에는 <파벨만스>의 말미, 즉 청년 스필버그가 영화계에 발을 디딘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그곳에는 영화사의 또다른 전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지의 출처는 각 이미지 하단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참고 서적: 조셉 맥브라이드, 스티븐 스필버그 시리즈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