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들에게는 억울하게도, '좋아한다'는 말이 '덕심'을 온전히 증명해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필버그 팬인 저도 비슷한 일을 겪곤 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세요?' '스필버그요.' '다 좋아하지 않아요?' (요즘은 '너무 옛날 사람 아니에요?' 라는 답이 더 많아지긴 했습니다...ㅜ)
액션, 스릴러, 드라마, 전쟁, 역사, SF, 호러 심지어 멜로와 로맨스까지. 장르 불문 온갖 명작을 낳은 할리우드의 산 역사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감독'의 대명사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의 팬이라고 말하는 순간은 끝이 아니라 (설명의) 시작과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스필버그의 찐팬입니다. 어릴 적 그의 영화들에 빠져 살았다, 라는 뻔한 수식을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쥬라기 공원>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공룡을 좋아해서였지 스필버그(이하 스감독)의 영화 세계를 좋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출처: Amblin
스감독의 팬이 된 것은 20살이 넘어서였습니다. 공룡은 좋아했지만 외계인은 무서워했던 저는 어느 공강 시간, 용기를 내어 <E.T>를 대학도서관에서 빌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말 끝에 나온 감상은, '아...'
수많은 명작이 있었지만 지금껏 '주인공'이 바로 '나'같다고 느껴진 이야기는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현실의 사랑에 아파하고 영화를 맹렬히 꿈꾼 시절의 <시네마 천국>이 그나마 유사했으려나요. 하지만 <E.T>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본 이후 스감독의 영화 전편은 물론이고 숱한 인터뷰와 관련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지금은 영화업계에서 일하는 제 삶의 '어떤 한 단면'이기도 한 스감독 덕질의 경험. 그 안에서 제가 찾은 건 '순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고향'이나 '집'이 되겠지요. 때로는 가족도 나의 집이 아닌 것 같을 때, 온전히 내가 속한 '집'이 있다면 그건 스필버그의 작품에 나오는 집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감독의 신작 <파벨만스>는 '집' 중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환상의 집을 선물한 감독이 자신이 '진짜로 살아온 집'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이 영화는 한 편의 모자이크처럼 보입니다. <파벨만스>에는 스감독의 영상이나 책에서 힐끔 힐끔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들이 알차게 버무려져 있습니다.
한 기념식장에서 스감독이 했던 연설에는 그의 '첫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지상최대의 쇼(1935)>라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할리우드의 고전 명감독 세실 B.드 밀의 작품인 이 영화에는 지미 스튜어트, 찰턴 헤스턴 등 당대의 명배우들도 총출동합니다. 서커스단원들을 다룬 이 작품의 대부분은 서커스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스필버그는 영화 말미, 거대한 충격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앞선 기차가 멈춰있고, 저 멀리 또다른 기차가 달려와 (중간에 끼어든 차를 날려버리고) 앞선 기차와 대형 충돌을 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출처: Basement Rejects (박하사탕?)
그 장면에 어마어마한 쇼크를 받은 스필버그. 그는 아버지 아놀드 스필버그에게 장난감 기차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하지만 기차가 철로를 얌전히 도는 걸 보기 위해서 조른 게 아니었습니다. 두 기차를 일부러 부딪치고 또 부딪치게 만드는 스필버그. 무고한 장난감 기차의 희생은 늘어만 가고, 결국 부모님이 한소리를 합니다. 그러자 스필버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녹화를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아버지의 카메라로 그는 초단편영화를 만듭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모형 기차 충돌을 찍으며 '편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오는 기차를 한 컷으로 찍고, 반대편 기차를 한 컷으로 찍은 후, 두 기차가 부딪치는 걸 또다른 컷으로 찍은 것이지요. 스감독은 일화를 마무리하며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얼마 안 가 스필버그는 애리조나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숱한 영화를 찍습니다. 그중에 <Firelight>이라는 영화는, 그가 살던 피닉스에서 처음 입장료를 받고 상영한 영화라 합니다. 이 영화는 스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UFO'를 소재로 합니다. 훗날 고전SF 명작<미지와의 조우(1977)>로 발전될 영화이기도 합니다.
출처: Phoenix Magazine (나의 '첫 영화 상영관' 이라는 스필버그 감독의 싸인과 함께)
한편 스필버그는 학창시절 보이스카웃으로 활동했는데요. 스카웃 친구들과 함께 각종 단편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광 기질을 보이는데, <파벨만스>에도 나오는 <Escape to Nowhere>라는 단편이 그 취향을 잘 보여줍니다.
(후에 기회가 되면 더 깊게 말씀드리겠지만, 스필버그는 워낙 2차대전에 관심이 많아 나중에는 FPS 고전명작 게임 '메달 오브 아너'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노르망디 작전을 다룬 한 미션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과 똑같이 전개됩니다)
소년시절 스필버그의 필름영화들은 하도 오래되어 이젠 원본을 제대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유튜브를 통해조금이나마 어린 영화광의 열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 빛바랜 필름과 60년대 서부 미국의 모습들... 제가 산 곳도 아닌데 괜히 아련하게 느껴지네요.
한편 이맘때부터 스감독의 가정에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출처: USA today
콘서트 피아니스트 출신이었던 어머니 레아와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아놀드 사이에서 난 스감독. 그를 만든 것은 어느 한 쪽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레아와 아놀드는 스감독이 소년이던 때 이혼을 하게 됩니다.
<파벨만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까지 (덕후로서 발견한) 어떤 소스보다도 더 자세하고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가정 상황이 스감독의 성장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으리란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이혼을 '가정의 상실'로까지 말할 수 없겠지만 - 영화에서도 그렇게까지 암시되지 않는다고 저는 보지만 - 그것은 분명 한 소년에게 '거대한 격변'이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더 많은 성장스토리가 남아있지요. 약간은 할리우드 틴 영화 같으면서도 또 어떤 면에선 그의 영화들처럼 재기발랄한 또다른 이야기. 다음 편에서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