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플랫폼으로서의 메타버스
패션의 전설을 만나는 시간
안녕하세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 메타버스를 통해 패션을 강의하는 기회를 확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메타버스란 플랫폼을 만난 후, 저의 주요한 사회적 활동 중 하나인 강의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의 Lecture 는 라틴어 Lectus에서 온 말입니다. 가르침을 위해 청중 앞에서 관련 주제를 다루는 책을 낭독하는 일을 뜻했지요. 지금껏 제 강의는 서구의 럭셔리 브랜드들과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진을 상대하기에 대면 강의가 많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강의가 어려워지면서 줌 zoom으로 일반 대중을 만났지요.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줌 zoom은 시공간의 제약을 없앴습니다. 게다가, 저만해도 기업에서 강의할 때, 주제가 패션이다 보니, 강사의 외적인 면과 품위를 연출하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게다가 지방에 위치한 공기업이나 기관, 아카데미에서 강의가 잡히면, 온전히 하루를 그 기관에 다 써야 하는데요 줌은 이런 제약에서 저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강의를 한 후엔 에너지가 많이 빠져서 장거리를 다니는 게 힘들었습니다.
메타버스는 줌과 다른 매력이 있어요. 강의목적이나 메시지의 내용, 전달해야 할 의미를 증폭시키기 위해 다양한 가상 공간을 설계하고 쓸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와 관련된 책을 낭독하고 싶을 때는 도서관을, 럭셔리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루프탑을,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서 대담을 할 때는 극장을 쓰면 되더군요. 최근에는 아트 갤러리도 생겨서 이곳에서 앞으로 패션전시나 디자이너의 프레젠테이션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작품과 패션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갤러리 공간은 비용을 내면 작가의 그림으로 벽면을 바꿔주기 때문에, 향후에는 아트페어나 패션 관련 행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SK의 Ifland라는 플랫폼을 쓰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제 니즈에 맞는 것들이 구축되어 있기에 사용을 하는 것일 뿐이죠. 최근 대기업들이 메타버스로 신규 개발자들을 뽑고 면접을 진행하는 걸 봤습니다. 올 1월은 샤넬과 디올, 루이뷔통, 에르메스에 이르는 유럽의 명품 브랜드의 역사와 미학을 메타버스를 통해 나누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플랫폼에 올릴 수가 있을 거 같습니다.
강의 후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질의응답도 길게 했습니다. 오프라인 강의는 청중의 라포르를 끌어내는 데는 유리한데, 질문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으세요. 특히 저처럼 연기하듯 강의를 하는 사람에겐 오프라인 현장이 주는 임장감(Sense of Presence)이 그립기도 하지만, 줌처럼 앉아서 고정된 시선으로 청중을 보는 것과 달리, 메타버스는 실제로 가상 아바타의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고, 다양한 동작을 연결해서 실제 움직임처럼 쓸 수가 있기에 요즘은 이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구현하는 임장성은 ‘원격 현장감(Telepresence)’으로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가상의 장소를 신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보조 장치 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중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 플랫폼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 저는 패션과 트렌드를 주제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려 합니다. 메타버스의 사용자가 10대가 많지 않냐고, 이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글쎄요. 소비자도 결국은 어떤 공간과 플랫폼 속에서 소비자로서 '사회화 Socialization'의 과정을 겪습니다. 메타버스 서비스가 시장의 한때를 달구는 버즈워드가 될지, 혹은 소통의 강력한 창구가 될지는 신중하게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