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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Jun 03. 2023

매 순간, 춤의 황홀한 순간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 컴퍼니의 작품을 보며 


우리의 삶이 춤이라면 

저는 인간의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춤사위'라고 생각합니다. 사위란 '사이 Between'의 세계입니다. 사위는 춤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들의 모음입니다. 아침이 되면 깨어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고 운전을 해서 일하는 직장까지 도착하는 것. 벌써 우리는 7번의 춤을 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아해할지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이뤄지는 모든 행동들이 어떻게 춤이 되느냐고요. 


왠지 춤이라는 표현, 혹은 무용이라는 한자를 사용할 때는 특정한 무대와 춤의 문법을 오랫동안 익혀온 전문 무용수들의 동작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떠올립니다. 이번  LG 아트센터에서 본 스웨덴의 현대무용단 예테보리 댄스컴퍼니의 두 개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숨 쉬는 매 순간은 춤이 된다고.  안무가 다미엔 잘레의 연 Kites와 샤론 에얄의 Saaba 두 작품을 봤는데요. 오늘은 연 Kites에 대해서만 쓰려합니다. 



힘겨운 삶을 견디기 위하여

작품의 안무를 맡은 다미안 잘레 Damien Jalet는 프랑스-벨기에 출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입니다. 그는 시각예술, 패션, 음악 등 다른 매체와 긴장감 있는 협업을 통해 춤의 경계선을 확장하고, 스스로 그 선을 넘고자 노력해 왔지요. 이번 그의 작업은 팬데믹 중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는 숨을 죽이고, 우리의 호흡을 살폈고, 우리의 동작이 만드는 선은 가늘어졌죠. 안무자는 저항하거나 굴복해야 하는 거대한 힘, 중력에 대해 탐구하면서 힘겨운 팬데믹 시간을 견뎠습니다. 



연의 가슴이 뚫려있는 이유

그에게 연 Kites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담아내는 은유였습니다. 연鳶은 한자로 보면 하늘을 활강하는 소리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인간은 새가 하늘을 날면서 그리는 '선의 풍경 Linear Landscape'에서 일종의 쾌감과 자유, 구속되지 않는 삶의 양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연이 동서양 모두에서 오래전부터 발견된 발명품인 이유겠지요. 


"부서지지 쉬운 것들로 만들어진 종이 연이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다. 연은 바람을 따라 높이 날고자 하지만, 갑자기 방향을 틀어 땅을 향해 뛰어들고 추락한다"라고 안무자는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영감의 뿌리를 설명합니다. 연은 우리 자신의 내면을 상징합니다. 이는 외부의 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느다란 끈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방패연을 날리며 서로의 끈을 끊는 것이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외부적 환경에 맞추어, 결국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삶을 견디는 힘, 편대비행의 미학 

방패연을 볼 때면, 마치 하늘을 비춰줄 창문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꼬리연은 또 어떤가요? 긴 꼬리의 힘을 동력으로 삼아 종횡무진 방향을 바꾸며 하늘의 한 점을 장악하는 연의 동학은 얼마나 강력한 것입니까. 작품은 이 연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삶을 교차시킵니다. 그들은 마치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연처럼 자신의 몸을 꺾고, 움직이고, 비틀며, 때로는 순풍을 타고 등성이를 올랐다가 역풍을 맞아 고스란히 땅으로 추락하는 그 운명을 연기합니다.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고지를 향해 상승하고 또 하강하는 움직임을 보다 보면, 마치 떼를 지어 순항하는 철새들의 편대비행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먼 거리를 나는 철새들은 항상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브이자 형태의 편대를 만듭니다. 큰 날개를 가진 새들이 날개 끝의 위치를 신중히 조절하고 다른 새들과 펄럭임을 일치시키는데 이는 앞서 가는 새가 만들어 내는 상승기류가 뒤따르는 이들이 부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나아가 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여준다는군요. 



우리의 연도 그러합니다. 가슴에 아픈 구멍 하나를 뻥 뚫어야 비로소 하늘을 품고 하늘을 나는 연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상처를 동력으로 삼아 하늘을 나는 연들을 봅니다. 우리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의 '희망'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미엔 잘레의 작품도 그랬습니다. 춤을 보고 나면 가슴 한편 답답했던, 마치 일 년 내내 결로 되어 있던 한 뙈기 땅에 하오의 따스한 볕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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