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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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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Nov 29. 2024

시간의 아름다움

조금씩 물이 빠져 쨍한 검정에서 약간은 빛을 잃은 검정이 되었다. 옷도 나이를 먹는다. 다만, 이제 더 이상 나이 먹은 옷을 섣불리 낡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역사와 의미가 붙은 옷이 아닌 특별할 것 없는 기성품이라 하더라도 그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은 첫 모습과 다른 고운 면을 갖추게 되는 옷들이 있다. 이제 그 옷들에서 시간이 만들어낸 멋이 조금씩 읽힌다.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던 새것을 가졌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경년 변화를 겪으며 익숙한 듯 새로워지는 것에서 더 기쁨을 느낀다.


시간을 보태 멋스러움을 서서히 더해가는 옷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취향이 변해간다. 이에 따라 별난 모양과 무늬에 손이 가기도 하지만 단순한 것에 더 마음이 간다. 튀는 모양과 패턴 덕분에 눈이 가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거북해지기도 하고, 또 유난히 시간의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아 낡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그에 반해서 처음에 강한 인상을 주지 않더라도 눈에 튀지 않게 어디에서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와 멋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이용되어 옷장에 하나씩은 있음 직한 수수한 것들을 조금씩 찾는다. 예컨대, 일자로 잘 뻗은 청바지, 그 짜임 덕에 은은한 결이 느껴지는 퍼티그 팬츠, 짜임이 촘촘하고 두터운 두께의 면으로 만들어진 럭비티셔츠, 색이 점차 바래고 그 단단한 촉감이 유연하게 바뀌는 몰스킨 원단의 쵸어자켓, 어딘지 모르게 몸에 딱 맞지 않아 보이고 투박한 멜튼 울 소재의 더플코트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버전이 바뀌며 새로운 기술로 더 편한 착화감을 주더라도 아웃솔의 색이 노랗게 변할 만큼 오래된 것을 찾게 되는 뉴발란스 운동화, 창을 갈아 가죽이 영 못쓰게 된 것이 아니라면 계속 신을 수 있는 제법으로 만든 티롤리안 슈즈와 유팁(U-tip)의 구두 같은 것들에도 눈이 간다.


이런 아이템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그 멋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마찰 때문에 군데군데 색이 빠지고 반들반들해진 퍼티그 팬츠, 보플이 일어 더 헤어리해진 더플코트, 색이 빠진 진에 담긴 시간의 멋을 새것이 도무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세월을 견디며 나이 들어가는 옷에 담긴 주름과 약간은 늘어진 부분 부분이 그것을 사용한 '나'의 움직임 때문에 생긴 것이어야만 느끼기에 더 예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내게서 시간의 멋을 더하는 아이템들은 그 시간의 길이만큼 기억의 길이도 길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은 기억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은 오직 그것과 함께 하며 의미를 부여한 나뿐이다.


점점 더 의미를 비워두는 어떤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생존에 충실하게 기능을 취하기 위한 소비보다는 그 기능에 보태 삶의 흔적을 채울 수 있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기에 시간의 지점에 덩그러니 놓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모든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지만, 나를 나로 보이게 하는 것들에는 의미를 담고 싶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의미를 지키며 또 다른 의미를 보태 서사를 완성하고 싶다.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제대로 된 유팁의 구두를 들였다. 다른 아이템들에 담긴 시간의 멋과 어렵지 않게 어울릴 수 있는 단순하고 보수적인 것이다. 아직 추위가 심하지 않아서 내피를 더하지 않은, 오래된 체크무늬의 비데일 아웃재킷과 색이 빠져가고 있는 검은색 진을 입고, 새것이라 빳빳한 구두를 처음 신었다. 옷과 옷, 옷과 신발 사이에 서로 다른 시간을 내 곁에 함께 두었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신고 걸으며 시계를 맞추며 시간이 남기는 멋을 채워가려고 한다. 함께 내게 나의 의미도 보태려고 한다.


J.M.Weston의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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