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촉촉하게
하루 종일 건조한 말만 곁에 두고 있으면 해가 넘어갈 즈음에는 마음이 말라서 카삭카삭 부러질 듯한, 때로는 물기가 모두 말라 마치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어느 것도 제대로 쓸 수 없죠.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결국 써야 하지만, 머릿속에 사람들의 그것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표정 없는 사람과 고정된 장면만 간신히 떠올라요. 생각과 행동의 서사를 써야 하는데, 낭패죠.
그럴 때 시를 읽고는 합니다. 시가 타인이 생각 속에서 살지 않게 된 굳어버린 마음의 터에 단비를 뿌리곤 하거든요. 슬픈 것도, 절망적인 것마저도 괜찮아요. 부정적 마음들이 그 마음들을 마주할 때, 기쁨이나 희망의 위치를 가늠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서, 절망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반되는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거든요. 결국 내 것이 아니어도 온갖 마음들이 섞여 건조한 마음의 땅에 비가 내리는 것을 대체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쓰고 있던 글을 간신히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매일 쓰는 것들이 마음의 자리를 넓게 두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비판받는 논문이지만 말이에요.
시에 담긴 마음들이 말라 고된 마음에 단비가 되어 다음날 아침에도 마른땅을 일구고, 꽃을 피우자 다짐할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 선물할 시집에 담을 짧은 메모를 준비하며(2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