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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이 공감컴퍼니 Apr 05. 2021

[상담사의 일기]1_방문객을 맞는 상담사

매일 매일 상담사례가 쌓이듯

내 마음 속에는 나의 내담자분들과 나눈 말들과 마음으로 나누는 교감 무언의 약속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잘 알려진 정현종님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보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어쩌면 상담자가 내담자를 맞는 순간 느끼는 그 감정, 밀려오는 것들을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하셨을까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한술 더 뜬다. 어떤 마음으로 마주 앉아야할지에 대해 너무나 섬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부서지기 쉬운 마음 그대로

혹은 부숴진 채로

혹은 부숴졌던 것을 봉합한 채로 상담실을 노크하는 내담자분들.


오랫동안 상담을 했던 내담자 한분이

장기 상담 목표로 정했던 바로 그 내용을 통찰하셨다. 

말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가장 핵심이 되고, 꺼내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재능이 많고, 하고 싶은 욕심도 많은 그 분에게 인생의 다른 막이 좍 펼쳐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완성된 어느 날의 모습을 꿈꾸고, 상상하며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달린다. 

그 그림엔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저 아래서 나를 우러러 보는 배경 그림이 새겨지기도 하고

환호와 박수와 헹가레를 받는 벚꽃잎 같은 화려한 배경이 수를 놓았을지도 모른다. 


문득 나의 젊은 날과 내담자분들의 지금의 날들이 오버랩되면서 여러 장면들이 꼬리를 물었다. 

여전히 엉뚱하고, 다소 유쾌한 나의 친구들은  소박하게 꾸던 자기의 꿈들을 이뤘다. 나는 상담사가 되었고, 어떤 친구는 PD가 되고, 교사가 되고, 치료사가 되었다. 각자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지만 우리 중 그걸 이룰 수 있을거라 자신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지 몰라서 고민을 하고, 이것 저것 시도해 보던 불안정한 20대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순간 순간이 힘든 만큼 또 너무나 즐거웠다. 모이면 애들이 하나같이 웃겨서 웃다웃다 밤이 깊어진 줄도 모르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당시엔 핸드폰이 없었다는ㅎㅎ) 부리나케 헤어지곤 했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나의 내담자 분들은 결국 이렇게 깊은 통찰도 하고 

하나하나 바나나 껍질을 벗기듯 자신의 문제를 밝히고 그 핵심에 다가가고 계신다. 


하지만 기억하시길 바란다.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고, 나자신에 실망을 했던 날들을.

그러면서도 친구들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취미를 찾아갔던 날들을.

새로운 일에 지원도 해보고, 

직장에서 후달리며, 어떻게든 욕먹지 않고, 잘 해내려고 애쓰다보니 조금 씩 더 유능해졌던 날들을....

이 과정과정, 

걸음 걸음이

내 인생을 수놓고 있다는 것을,

참으로 아름다운 수를, 

한 번뿐인 바늘땀을 섬세하고도 촘촘하게 새겨가고 있다는 것을, 

완성작이 나오기까지

밤을 새며 수를 놓던 날들 

그 시간, 그 과정 자체가 보석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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