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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루아 Jul 27. 2020

아빠처럼 살지 않기

나의 일상, 나의 생각


아빠처럼 살지 않기          



친정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빠는 말했다. 또 이사를 한다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부터 역마살이 꼈다는 말이 어울렸다. 회사 생활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고 그 마저도 때려치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리고 결국 자영업을 택했다. 

    

이사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빠는 이사를 할 때마다 빈집의 이것저것을 고쳤다. 10여 년 가까이 해온 자영업이라는 것이 집수리나 시공 같은 것들이었기에 아빠는 빈 집에 들어갈 때면 이것저것을 고치곤 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것이 문제였다.     


즉, 아빠는 이사를 갈 때마다 몇백에 가까운 돈을 버리면서 다니는 중인 것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또 이사야?’라고 말을 하면 아빠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알고는 있다. 나와 남편은 아빠가 또 이사를 한다고 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모셔서 살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내가 돈을 보탤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아빠 혼자만의 몫이었다. 이제는 나이도 곧 70인데 언제까지 저렇게 이사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번에도 아빠는 이사를 한다고 했다. 내게 말하지 않은 채 이미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벌써 또 돈 깨졌다는 말이 들려온다. 물론, 위에 말했듯이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말 한마디 보태는 것뿐.          



내 어릴 적의 기억에도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 다녔다. 내 기억 속에서만도 벌써 10여 차례의 이사를 했었다. 난 그것이 너무 지겨웠다. 어린 나이였기에 내가 고생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렇게 옮겨 다니는 것만도 지겨웠다. 내가 결혼 후 20년을 살면서 딱 한 번의 이사를 한 것은 다 아빠 때문이다. 지겨워서 이사는 절대 다니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사를 제외하고도 내가 아빠 때문에 결심한 것들은 많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빠처럼 살지 않기,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20년도 더 전,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은 정말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자영업을 하던 중에 말이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찾아다녔다. 정말 먹고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그 와중에 난 방치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엔가는 차비를 받지 못한 상태로 부모님이 나가셔서 학교를 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학교를 빠지게 된 것이다. 당시엔 핸드폰은커녕 집에 전화도 없었던 상태였기에 말 그대로 무단결석이 되었다. 난 그날 하루 종일 빈 집에서, 내 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다음날에 학교는 갈 수 있을까, 학교에 가면 뭐라고 해야 하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엔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예상대로 담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난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 차비가 없었어요.’ 그때에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더라. 뭐 평소에 말썽이나 부리고 하던 애가 아니었기에 선생님은 그냥 별말이 없으셨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사실대로 말했다. 부모님한테 버스비 못 받아서 못 나왔다. 대충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수업료를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 가는 것은 허다했다. 그 어느 날엔 너무나 수치스럽고 억울한 마음에 펑펑 울기도 했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 때에 다짐했다. 나는 아이를 아빠처럼 키우지는 않겠다. 나처럼 크게 하지는 않겠다. 절대 애들 앞에서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겠다. 이사 자주 다니지 않겠다. 술도 마시지 않기. 자영업, 사업은 절대 반대하기. 아이들에게 금전적으로 스트레스 주지 않기 등등.  

   

나는 여러 가지들을 아빠 때문에 결심했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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