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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리적인걸 Jan 01. 2023

광화문 광장 인문학 강연회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2

배경지식 알면 더 재밌는 현대 미술의 이해

후기 1(고전주의 미술)에 이어 바로 작성한다는 것이 며칠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이창용 작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더블북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현대미술의 대표 화가인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제국 출신, 유대인으로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8남매 중 장남이었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적 재능이 어릴 적부터 뛰어났기에 후원을 받아 23세에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유학 시절 초기 5년간(23~28세)이 그의 전성기였고, 그 기간 동안 다양한 미술 기법을 터득했다. 그 이후로는 반복이라 볼 수 있다는 이창용 작가의 설명~


색채의 마술사로 표현되는 마르크 샤갈은 피카소의 큐비즘(입체주의)과 마티스의 포비즘(Fauvism, 야수주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그린 화가이다. 


이날 이창용 작가의 해설로 인해, 그간 난해하기만 해서 추상적인 느낌만이 강했던 마르크 샤갈 그림을 모두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샤갈이  살아 온 배경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곁들여진 채로 그의 대표작 몇몇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올린 연주(The Violinist), 1913」,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 


제대로 유학 준비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샤갈의 프랑스 유학 생활은 언어장벽이 높았다. 그로 인한 외로움과 향수병...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유대인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압박을 받았고 빈곤했던 삶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해군장교 전역을 한 이창용 작가가 20대 초반의 20~30명 부대원을 통솔했을 때, 단 한 명도 고향이 그리워서 병이 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경험담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고향에 두고 온 연인에 대한 상사병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된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이 고향에 있었다. 하지만 샤갈은 후원을 받아 유학길에 오른 만큼 성과를 얻기 전까지 귀국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마르크 샤갈, 1913



참고로, 샤갈은 캔버스를 살 돈이 마땅치 않아 테이블보 등에도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바이올린 연주자의 옷에서 보이는 그 격자무늬와 같은 것은 그 테이블보의 문양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 한다. 


초사실주의로까지 비춰지는 샤갈은 사실만을 그렸다한다. 


어디를 봐서?!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마르크 샤갈, 1911 / 뉴욕현대미술관



그리움에 사무쳐 꿈속에서 고향을 보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면?


사실 그의 그림은 전날 밤 꿈속에서 본 고향 가족, 마을, 이웃 그리고 약혼자 벨라를 표현했다.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초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인 것이다. 


위 두 그림에서 녹색 얼굴로 표현된 사람에 대해서는 샤갈이 별도의 해석을 남기지 않았다는 이창용 작가의 부연 설명이다. 


인상파는 한순간의 감정(인상), 느낌을 표현한다. 


1914년 샤갈은 결혼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어느 날 벨라가 작업실로 와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라고 샤갈에게 말했다. 무슨 날이었을까?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을 때 남편이 당황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흡사 "뭐가 바뀌었는지 알아?"라는 것을 묻는 것과 같은 질문~


벨라는 샤갈에게 "당신의 생일이에요~"


샤갈의 「생일(1915, MoMA)」은 사랑하는 벨라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작업실에 찾아왔던 날 자신의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을 표현한 것이었다.


「생일」, 마르크 샤갈, 1915 / MoMA



그 해 샤갈은 벨라와 결혼을 했고 3년 후인 1918년 아이(딸; 이다)를 낳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에서 러시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 판단한 샤갈을 가족을 위해 1922년 러시아를 탈출했다. 난민처럼 떠돌다가 파리에 정착했다. 


「에펠탑의 신랑신부」, 마르크 샤갈, 1938



파리로 돌아온 샤갈의 그림에는 여전히 벨라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면서 유대인 숙청에 앞장섰던 히틀러는 샤갈을 콕 찍어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취급했다. 나치는 1937년 '퇴폐미술전'을 열어 샤갈 그림을 전시했다. 


결국 샤갈은 미국으로 탈출했고, 이후 3년 후 벨라가 급성 간염으로 죽었다. 자신의 전부를 잃은 것과 같았던 샤갈은 붓을 놓았으나, 딸 이다의 말에 힘을 얻어 1년 만에 다시 붓을 들었다. 


샤갈의 「과거에 경의를 표하다」, 1945, MoMA」은 그의 벨라를 향한 그리움, 슬픔이 잘 묻어나는 그림이다. 


「과거에 경의를 표하다 」 ,마르크 샤갈,  1945, MoMA」





이처럼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 필수는 아니지만, 최소한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면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이창용 작가 친필 서명을 받은 신간 도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에는 더 많은 작품에 대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생각하도고 강연을 듣고 와서 아직 첫 장을 넘기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2019년 11월 프랑스 여행 계약을 완료해둔 상황에서 그 해 12월 우한 독감으로 알려져 급속도로 전파된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이 무기한 보류되었다. 멋모르고 규모에 압도당해 진품이구나하며 얄팍한 지식 하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을 훑어보기에 바빴던 과거와 달리, 훗날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한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3년 1월 2일(월) 톡파원 25시에도 미깡 이창용 도슨트가 출연한다니 꼭 챙겨볼 예정이다.


강연회 끝날 때 사회자가 안내해 준 바에 따르면, 2월 5일 코엑스 별마당에서도 이창용 작가 강연이 있다 한다.


그 밖에 국방일보 인터넷에 연재하는 글이 있다 했는데, 기획 > 교양 > 작가와의 만남에서만 찾았다.




국방일보 > 기획 > 교양 > 현대미술이 있는 것을 처음 봤다. 박희숙 작가가 연재하는 칼럼이다. 




올 3월에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스페인·네덜란드편(더블북)」이 출간될 예정이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 지금이기에 문화, 미술과 접목해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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