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사비맛 찹쌀떡 Oct 31. 2023

지금 만나러 서점에 갑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어쩐지 대형 서점의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붕- 뜬 그곳의 공기를 마시면 아무리 책이 가득하다 한들 북적거리는 주말의 마트와 비슷한 결이라는 느낌을 왠지 지울 수 없다. 차분하고 고요히 가라앉도록 허용하는 자리가 보이지 않는 도심의 대형 서점. 대신 이곳에는 지금의 트렌드가 있다. 어떤 시기엔 모든 책이 부동산이었고, 또 어떤 시기에는 모든 책이 비트코인이었다. 사방에서 ‘나를 읽지 않으면 뒤쳐지게 될 거야’라고 주장하는 책들을 무시하고 나는 ‘한국 소설’ 코너로 간다. 찾는 책은 없다. 오늘 나의 목적은 책을 ‘만나는 것’.


서두르지 않고 왼쪽 가장 윗 줄부터 책장의 책을 한 권씩 눈으로 읽는다. 제목도 작가 이름도 보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생각보다 비슷한 제목이 많구나. 글의 소재가 되는 주제는 생각보다 많이 겹치는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책장 한 칸을 다 보았다. 아직 ㄱ부터 ㅎ까지 가려면 책장 3개가 더 남았다. 유명한 책, 유명하지 않은 책, 오래된 책, 새로 나온 책은 책장에 구분 없이 오로지 서가의 기준에 따라 정렬되어 있을 뿐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ㅇ으로 시작되는 작가의 책들이 나열된 지점이었다. 이찬혁, 이라는 이름은 내가 알고 있는 뮤지션의 이름과 같았다. 제목은 ‘물 만난 물고기’. 책장을 벗어나 내 손에 들려 나온 그 책은 정말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책과  ‘만났다.’ 


이찬혁의 책을 만난 뒤 개인 sns에 쓴 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책을 살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서점에 간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인터넷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결제한다. 원하는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성인의 절반에 가까워지는 시대니까. 


그러나 그렇다면  ‘책을 만나는’ 기회는 이제 어디서 가지게 될까.



최근 구립 도서관에서 회원증을 만들었다. 집에 책이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구매보다는 대여를 하는 쪽으로 잠시 방향을 바꾸자는 시도였다. 도서관의 열람실에는 대형 서점과는 다른 공기가 있다. 오래 머물다 갈 수 있겠다- 안도감을 주는 공기. 상업적인 더함이 없는, 모든 책이 공평한 자리에 놓여 있는 곳. 얼마나 오래 같은 자리에 꽂혀 있었을까, 하얗게 노랗게 색까지 바래버린 책들이 가득한 ‘한국 소설’ 코너로 간다. 여기서도 내가 만날 책을 기대한다. 


책 한 권을 만나는 일은 정성과 인내가 든다. 책 제목이나 작가 이름을 차례차례 짚고 넘어가는 게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날 나와 눈이 마주친 책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30분의 탐색 이후 만난 책이다. 


어른이 된 후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나, 돌아보게 한 구절. <어린이라는 세계> 중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지만,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책과 만날 기회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자꾸만 '다음'을 생각하게 되므로, '기대하고 행동'하게 되므로 또 책을 마주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 책장을 덮으면서 확인한다. 분명한 건 티브이나 넷플릭스를 볼 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읽는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었음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감사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