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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11. 2021

인생이 돌이킬 수 밖에 없이 망한 것 같을 때

'고민하지말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살려고해도 불을 끄고 누운 침대 위에서 머리 속을 메우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시간 위에 음을 올리는 음악의 기본 원리처럼,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올려두지만 완성된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든 소음처럼 나를 괴롭힌다. 나는 자꾸만 잘못된 건반을 누르고 있고 그걸 알고 있지만 대체 88개의 건반 중 어떤 건반을 눌러야하는 지 알 수 없기때문에 멈출수가 없다. 나는 모든 손으로 건반을 쾅쾅 내려치며 아무거나 얻어걸리라는 심정으로 폭주하지만, 괴로운 소음이 되어 다시 울린다.  피아노를 멈추고, 뚜껑을 덮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내 인생의 결정권이 여전히 내 손에 있는게 부담스럽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나를 가장 파괴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내 심장을 조여온다. 아무나 나에게 이렇게저렇게 살라고 내 등을 떠밀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이렇게저렇게 살라고 말하는 게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더이상 돌아갈 수도, 새로 시작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이런 시기에 그냥 발 앞만 바라보고 살자며 맹목적이 되는 건 상황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모든 걸 다 망쳐버리고 싶은 마음, 다 내려 놓고 싶은 마음, 근거 없이 불안해서 나를 더 코너로 모는 나의 마음을 억지로 눌러두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원래 애매하게 알 때가 가장 불안한 법이니까... 머리 속으로 내 불안의 기저가 무엇인지 곱씹어본다. 곧 AI가 인간을 대체할테니까 직장을 잃을 것이고, 노인 빈곤률이 더 심화되고 있으니까 나도 노인이 되면 늙어 고독사를 할 것이고, 더 잘사는 누군가와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증을 앓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부분은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거나, 단 한명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이런 식의 나쁜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검증해가면서,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믿고 있다)



인공지능은 자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같은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일 뿐이므로 적어도 내가 살 향후 5-60년은 인간과의 협업으로만 이루어져서 인간의 노동력은 계속 필요할 것이고,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이 일본처럼 모자라 질 것이라서 노동에 대한 대가는 높아지므로 빈곤할 확률은 적을 것이다. 고독사 할 지 안할지,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증에 걸릴지 안걸릴지는 좀 더 두고보면서 해결방안을 찾아봐야겠다.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공포. 내가 내 자신일 때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슬픔. 이런 것들이 오늘의 인생을 너무 혼자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한 번만 귀기울여 들어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내가 단 한사람이라도 나에게 귀기울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좌절감이 목이 메이게 만든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은 나로써 이해받지 못한다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혼자라서 외롭다는게 꼭 사람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 쓸 수 있는 돈 같은 물질들도 다 외로움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렇게 인생이 다 비어버린 것 같을때는 비워야 다시 채워질 수 있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남이 쏟은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비우고 있는 것이다. 다시 채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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