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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Feb 07. 2022

결국, 만남의 광장, 메타버스

메타버스란?

  갖고 있는 정보의 형태와 구현되는 방식, 필요한 장비와 이용자의 태도 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온라인에 구현된 세계인 ‘가상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이 메타버스다. 아무래도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 운영될 수 있다는 한계 때문에 현재 대다수의 메타버스 플랫폼은 아직은 게임 아니면 가상의 소셜 네트워크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메타버스에 접속한다고 해서 꼭 영리를 목적으로 활동할 필요도 없고 기술 집약적인 방식으로만 접근할 필요도 없다. 현실세계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새로운 시대에 발맞출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이프랜드 같은 국산 메타버스 플랫폼은 사람들의 교류를 전면에 내세운다. 교육, 회의, 컨퍼런스, 박람회 등을 열 수 있고,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여럿이 있을 때 더 재미있는 상영회나 파티 같은 모임을 개최할 수 있으니 어서들 접속하라고 한다. 이미 줌과 구글 미트,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란 화상회의 플랫폼이 있긴 하지만 단순히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걸 넘어 가상공간에 모여 현실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내가 되라고 한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같은 오픈월드 게임 플랫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미 만들어진 게임을 즐길 수도 있지만, 직접 게임과 공간(맵)과 아이템을 수정하거나 제작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창작 활동의 결과물과 교육 자료 등이 무한한 공간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데, 놀이터(sand box)란 울타리를 넘어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사용 앱과 늘어나고 있는 접속 시간이 바로 증거다. 

  어스2(Earth2)나 스마트서울맵(S-map), 버추얼 헬싱키 프로젝트 등은 현실세계를 고스란히 디지털 세상으로 옮겼다(Digital Transformation). 단순하게는 현실 세계를 거울처럼 동일하게 복제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데이터와 많은 이용자들의 경험까지 덧입혀서 실제와 유사하게 작동하고 심지어 동일한 체험까지 제공하는 확장된 현실(eXtended Reality)로 존재한다. 그동안 인류의 문화유산과 예술작품들이 수용자의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면 이젠 복제된 거울세계 속에서 더 실감나고 더 직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제작도구를 무료로 개방해서 이용자들이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될 길을 열어주고 있다.

게임과 메신저를 닮은 메타버스

  현재까지의 모습만으로 유추하자면 메타버스는 게임과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접속만 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아바타를 움직여 현실・가상세계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뚜렷한 플레이의 목표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도 되고 점수를 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차이뿐, 아바타를 움직여 혼자 혹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는 게임과 동일해 보인다. 

  또 많은 메타버스 속 활동이 대부분 타인을 만나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라면 메타버스는 일종의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과 교육을 함께 하고, 자신의 일상과 활동을 공유하며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소통을 나누기 위해 수시로 접속을 한다. 현실의 내가 남이 부여한 외모와 허락한 정체성으로 제한적으로 움직인다면, 메타버스 속 나의 아바타는 내가 꾸민 생김새를 갖고 내가 부여한 성격과 역할을 수행하며 나와 닮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 나로 살아간다. 메타버스에서는 부캐와 멀티 페르소나가 기본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한 만남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속성을 지닌 메타버스를 어디에 활용하면 좋을까. 젊은 세대에게 큰 의미를 지닌 재미라는 강력한 특징이 있고, 저마다 혼자이길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관계와 관심을 요구하는 SNS 시대에 메타버스는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이프랜드의 3개 분야 공모전.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의 공간

  비대면 수업과 재택 근무. 갑작스럽게 도입됐지만 ‘이곳’에서 ‘저곳’을 접속하고 내 앞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향해 열심히 말을 걸고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은 분명 ‘미래’의 그것이다. 적어도 공간의 제약과 번거로운 각종 절차를 뛰어넘어 이뤄지는 원격 회의과 교육 활동들은 ‘반드시 만나서 해야 한다’는 오래된 벽을 허물었다. 다양한 메타버스 기술과 플랫폼이 속속 등장할 것이고, 클라우드 기반의 협업 방식은 보편화될 것이다. 꼭 모이지 않아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소통과 만남의 방식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또 메타버스에서는 상대의 존재가 실사보다는 아바타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외모나 각종 선입견들로 인해 만남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이 줄어들 것이다.


놀이처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학습의 공간

  미디어센터를 포함한 학교 안팎 기관에서는 새로운 미디어 교육에 대비해야 한다.

  단순히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걸 넘어 시민교육 차원에서 메타버스 에티켓 교육을 한다든가, 상담이나 심리치료의 도구로 메타버스와 아바타를 사용함으로써 익명성을 보장하고 아바타 역할극과 같은 거리두기를 통해 사안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도록 도와줄 수 있다. 

  카메라가 없이 영상을 제작하는 방법도 교육내용에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굳이 배우를 모으고 공간과 소품을 꾸미면서 카메라로 촬영해야만 동영상인 건 아니다. 게임을 조작하며 캡처한 장면들에 이야기의 살을 붙이거나 처음부터 인형놀이하듯 조작해서 만든 메타버스 속 아바타의 움직임들을 동영상으로만 캡처하면 바로 애니메이션을 위한 소스가 된다.  

  직접 내가 활동할 메타버스 공간을 디자인하고 아이템을 제작할 수도 있다. 전문적인 코딩 능력과 그래픽 도구 사용능력이 없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작도구가 여럿 존재한다.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구조나 재료공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동시대 사람들의 관심을 잘 포착하는 감각만 있어도 작가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아도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무엇보다 제작 활동 자체가 게임처럼 재미있어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할 수만 있다면 이미 그 교육의 절반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마인크래프트에 개설된 '검열되지 않은 도서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

  그곳에선 현실 세계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현실에서 하지 못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 트럼프, 바이든, 힐러리 클린턴 같은 미국 정치인들은 메타버스 공간에 선거 사무소를 차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조슈아 웡을 비롯한 ‘자유 홍콩’ 운동을 펼치는 활동가들은 현실 세계의 억압과 핍박을 피해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란 게임 안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 표현을 했다. 마인크래프트 속 ‘검열되지 않은 도서관(Uncensored Library)’에는 각국 정부로부터 검열된 기사와 차단된 금서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메타버스다. 적어도 아직까진 큰 비용 없이도 활동할 수 있고, 아이디어만 번뜩인다면 얼마든지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꼭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작품 발표회나 상영회도 가능하다.      

전남교육청에서 2021년에 개최한 메타버스 진학박람회 풍경.

만남의 광장

  문자가 그랬듯, 신문과 라디오와 방송이 그랬듯, 인터넷이 그랬듯, 메타버스도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생각을, 생각과 생각을 이어주는 도구다. 비록 익숙한 매체의 전달 방식을 벗어나 공간의 제약 없이, 심지어 물성조차 띄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은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하겠지만 현실세계를 닮았으면서도 현실의 갖가지 제약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기 때문에 비로소 새로운 경험이 가능한 곳이 바로 메타버스다. 

  아직 그곳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담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메타버스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딘가로 가는 도중 잠시 쉬기 위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고 본다. 일단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목적지와 탈 것과 동행인을 찾게 될 것이다.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의 매거진 [미디어생각 제33호] 이슈에 12월에 쓴 글입니다.
http://www.ismedia.or.kr/usr/bbs/BbsMain.do?smenuNo=20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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