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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Dec 06. 2024

계엄 잘 보여주는 기사 어디 없나

비상계엄 D+2


  제목대로, 계엄 잘 보여주는 기사 어디 없나.


술 먹다가 계엄령 선포를 보는 기분 외국인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 직접 촬영


  비상계엄이란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3일째 되는 오늘. 정치부 아니고 국제부 소속인 내가 이 사태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3일 저녁 급히 찾아갔던 국회는 "출입증 있냐"는 질문 한 방에 입장이 불가했고, 그렇다고 집에 있는 건 또 뭔가 아닌 것 같아 회사라도 가 있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밤을 거의 지새웠고 몇 편 기사를 썼지만... 일본 담당인 내 역할은 일본 정부나 언론에서 나온 반응, 평가,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을 전하는 것이고.


  일본 매체에서 나오는 보도의 전반적 흐름, 또는 뾰족한 메시지 내지 스트거리를 뽑아내서 기사화하거나(나는 이걸 상향식이라고 부른다. 나홀로 호칭), 한국의 지금 시점에서 의미있는 기사 초점에 맞는 보도 내용을 뽑아내거나(이건 톱다운이겠고)... 몇 개 기사를 쓰다 보니 든 생각. 이건 일본 언론에서 쓴 '좋은 기사' 하나를 전하는 건 아니지 않나. 한 매체 한 기자가 이렇게 잘 쓰기도 한다고 보여줄 필요도 있는데. 혹은 정리를 기가막히게 하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특출난 기사도 좀 모아보면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기사는


1. 로이터

<South Korea’s short-lived martial law: How it unfolded and what’s next>

https://www.reuters.com/graphics/SOUTHKOREA-POLITICS/GRAPHICS/lgpdjajkbpo/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 시점부터 해제까지 약 6시간 동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시각화한 기사.


  이거 한국 언론은 다 취재된 내용이고, 영상 푸티지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근데 이렇게 정리를 안했음.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 인포그래픽이니, 인터랙티브니 뭐니... 엄청 유행인 때가 있었고 나름 경향신문이 선도적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데 안할 때엔 이유가 있는 법인데, 요약하자면 고품질 기사가 돈이 안돼서 그렇다. 정확히는 돈이 안되는 구조라서. '그까이꺼' 돈 안돼도 간지나는 거 하나 만들면 어떻냐 싶지만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다른 곳은 덩치가 졸라 커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셨거나, 돈벌이는 따로 할 테니 기자들은 저널리즘하시라고 큰소리 떵떵치는 곳이거나... 대충 그렇다.


2. 뉴욕타임스

<How the Impeachment of South Korea’s President Could Unfold>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4/12/04/world/asia/south-korea-impeachment-vote-president-yoon.html


  탄핵 절차를 정리한 기사.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라고 쓰고 '어대권'이라고 읽는다. 어쩌면? 어쩌다 보니? 어찌합니까?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은 물론 헌법재판관 사진까지 첨부해 이 사태에 책임 큰 자들을 눈으로 확인케 만든 게 일단 미덕. 국회 의석수 그래픽이나, 시나리오 따라 화살표 전개되는 방식도 보기 편하다. 앞서 로이터 인터랙티브에도 이 내용이 있긴 한데 상대적으로 덜 보기 좋음.


  아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그래픽이랑 비교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이 정도는 한국 모든 언론사가 매일 같이 만드는 수준. 개중에 닛케이 그림이 일목요연하게 잘 만든 편인 건 맞는데, 이들끼리 비교하는 건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CB043MU0U4A201C2000000/




  그림 말고, 일본 언론 기사 중 흥미로운 걸 꼽아보자면


1. 마이니치

<「韓国史上最も不可解な出来事」 なぜ尹氏は戒厳令宣布に至ったのか>


https://mainichi.jp/articles/20241204/k00/00m/030/347000c


  번역하면 <'한국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 윤 전 대통령은 왜 계엄령 선포에 이르렀는가?>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번역기가 하시는 말씀임.


  정리를 무척 잘 했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한국 역사상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라는 한국 기자 말을 인용하며 시작. 진짜 왜그랬냐고. 그게 다들 궁금한 상황이니 당연히 읽게 된다.


  그리고 가설 1. "한국 언론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 경찰을 관할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지지율 하락과 국회에서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윤 총장이 '믿을 만한 동료'라고 생각하는 극소수 측근들과만 돌파구를 모색한 결과 이런 계획을 추진하게 된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지지율 하락상과 야당의 강력 공세는 당연히 배경으로 깔린다.


  가설 2. "이런 상황에서 특히 윤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부인 김건희 씨와 관련된 문제다. ... 여당 내 갈등으로 김 여사가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 것도 윤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웬 학자 아저씨를 인용한 가설 및 진단.

  가설 3. "또 하나 재확인된 것은 뉴라이트라는 우파 운동의 영향력이다. 담화를 읽어보면 윤 의원은 국회가 (북한의 영향을 받은) 종북세력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진단.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계엄령을 국방부 장관이 건의했고, 참모총장도 동조했다는 점이다. 군 고위층 중 북한의 사회적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 내 보혁(쉽게 말해 보수 진보) 분열의 종착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어지는 문장은 "거꾸로 말하면, 한국 좌파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로, 매우 서늘하다. 하지만 아무도 안 듣겠지?



2. 아사히신문

<尹氏はなぜ、成算もなく非常戒厳に踏み切ったか 元大統領側近の視点>


순서는 좀 안맞지만, <윤씨가 왜 계산도 없이 비상계엄을 실시했는지, 전 대통령의 측근이 견해를 밝혔다>랄까.


https://digital.asahi.com/articles/ASSD40VN7SD4UHBI01BM.html?iref=pc_extlink&_gl=1*wnos03*_gcl_au*MjE0NTc3NDY0Ny4xNzI2NzAwNDYz


  '전 측근'이라고 뭉뚱그려 놨는데, 이 사람 무려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인 강인덕(93) 전 통일부 장관이다. 장관은 김대중 정부 때고, 박정희 정권 때는 중앙정보부(소위 중정) 북한국장, 심리전국장 등을 맡았던...


  이분 초반 질의응답이 이렇게 진행된다.


Q. 야당이 (계엄) 해제 결의를 해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A. "나도 박정희 정권 시절 계엄령 현장을 여러 번 지켜봤다."


???!!!!


  그 다음 강 전 장관은 "계엄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선 군부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 이번 비상계엄에 찬성했던 측근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 뿐이었다고 한다. 지금 군부가 일사불란하게 윤 대통령을 따를 것 같지는 않다"며 말을 이어가는데, 개꿀잼.


  탄핵이냐, 하야냐.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이 무슨 선택을 할지에 대해선 이렇게 전망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퇴의 길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 다시 말하는데, 예전에 심리전 뭐 하셨던 분이십니다...


3. 아사히 2

<もし非常戒厳が日本で起きたら 自問自答の夜「民主主義は簡単に…」>


  대충 <만약 일본에서 비상계엄이 발령됐다면, 이라고 자문자답하는 밤 '민주주의는 쉽게...'>


https://digital.asahi.com/articles/ASSD52HJYSD5UTIL001M.html?iref=pc_ss_date_article


  "일본 헌법에는 (비상계엄과) 비슷한 규정이 없고, 정치 구조도 크게 다르다"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삶과 겹쳐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사 시작.


  여당 의원 포함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직후 국회로 뛰어들어가 이튿날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 이른 것을 언급하며 "일본에는, (특히) 여당에는 몸으로 막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라는 시민 질문이 일단 흥미. 다른 사람은 “시위가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한 시민(무려 래퍼임)은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시민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오늘부터 당신이 주권자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시작됐다"는 역사적 배경 차이를 짚으며 우리 일본인도 민주주의를 키워야합니다라고 얘기. ... 밖에서 한국을 보면 신기한 장점이 꽤 있다는 게 역시 신기합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인용하는 분도 있음. BTS 팬인데, 노래 듣다가 한국 역사를 배웠다고. 그는 "BTS 노래에 5.18 민주화운동을 암시하는 가사가 있다"면서 "위급할 때 몸이 움직이는 건 역사와 일상이 맞닿아 있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는데, 무척 와닿는 면이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이 10년도 안됐다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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