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들었다. 정확히는 곡을 처음 발표한 열린음악회 무대를 봤다. 한 번 보고는 끌 수가 없어 여러 번 봤다. 그러다가 확신하게 됐다. 이찬혁이 미래의 '레전드'일 것을.
https://youtu.be/pcf9aH7WhN0?si=52cDdC6NoKwAlUef
무대에서 이찬혁은 제약 없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 소리내고 움직이는 듯했다. '자유'가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 개념이 현실에 구현된다면 얼추 저런 모습 아닐까 싶었다. 대중음악하는 사람이 가스펠 스타일 짤 생각을 또 누가 하겠나. "Back in the day / 한 사람당 하나의 / 사랑이 있었대." 왜 가사까지 좋담. 슬쩍 눈물이 났다.
무중력 춤, 노래 중간 약하고 달뜬 신음은 누가 봐도 마이클 잭슨의 오마주였다. 의상은 마빈 게이인가. 옛 스타일을 지금 아름답게 소화한 것이 신기했다. 예전엔 언뜻 촌스러웠던 의상 스타일과 무대 퍼포먼스까지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모자 아래 내내 웃는 입 모양까지 완벽한 연출이었다. 옆에서 함께 무대를 보던 아내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악뮤' 팬클럽에 가입했다.
이찬혁 주식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다. 퀸,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 내 인생 어느 국면엔가 신처럼 떠받들었던 뮤지션들은 무언가 하나씩 고장나 있었다. 반면 이찬혁은 적어도 지금까지 이상한 데가 없다. 따뜻한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 여동생이자 '악뮤' 멤버 이수현과도 사이가 좋다. '지디병' 흑역사조차 한때 이슈일 뿐이다. 내 성장기가 언론 조명을 받았다면 저보다 더 했을 게다. 리스크 없는 성장캐라니, 주가 오름세가 눈 앞에 그려지지 않나.
지금은 BTS가 주목받지만, K팝이 아이돌 중심 유행을 지나 한국 노래에 대한 전방위적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이찬혁이 승자가 될 것이다. 내 딸, 아들은 서태지, 지디가 아닌 이찬혁을 말하겠지. 그 생각을 하니 서글프고 행복하다. 빛나는 재능을 먼 발치에서 즐기는 마음이 이러할 것이다.
덧. 중간에 이찬혁이 코러스가 위치한 무대 주변부로 이동해 '얼빡샷' 찍은 것부터 다시 무대 중간으로 이동하는 카메라 연출도 좋았는데, 댓글 보니 '부장뱅크' 본업한 거라고 하더라. 방송사, 언론사 내부 조직 구성 아는 사람 입장에선 빵 터질 수밖에 없는 분석. 저 포함 늙어가는 직장인들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