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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251008

by 조문희


남들은 초장기 연휴라지만, 나는 불과(?) 6일 만인 오늘이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다. 한글날 출근 일정이 잡힌 탓이다. 대신 금요일부터 쉬었으니(그래서 6일이다) 그러려니 넘어가야 하나. 아무래도 해외 여행 갈 일정은 못 됐으니 조금은 아쉽다.

밤늦도록 벗들과 (술을 곁들인) 정담을 나누고 새벽 일찍 깨어났다. 대략 6시였나. 아내는 다가올 업무 스트레스 탓인지 그때까지 <가십걸> 등 미드를 본 모양. 늘 일에 치이고, 일을 안할 땐 일할 걱정에 치인다. 노동하는 삶은 대개 비슷할 테지만 유독 딱하다. 가여운 마음에 억지로 재워 놓고 카페에 갔다.



오늘은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를 읽었다. ‘오늘은’이라 쓰고 보니 이상하다. 요 몇 달 브런치에 독서 기록 하나 제대로 안 올렸는데. 하지만 글쓰기와 별개로 늘 뭔가를 읽고는 있다. 읽는 게 찐 취미인 사람이다.

책은 위대한 기자 화모씨의 추천을 받았다. 엔도 슈사쿠의 이런저런 강연을 모아둔 책이다. 첫 강연은 명저 <침묵>을 쓰게 된 계기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벌서 10년도 더 됐다니 놀랍다) 푹 빠져 읽은 책이었기에 흥미진진하게 봤다. 옛 감상이 되살아나는 기분… 을 떠나,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가’는 뭐 하는 사람인지에 관한 철학과 고민의 결이 생생해 좋았다.

아래는 인용. 나머지 강연도 대체로 좋다. (아내 얘기하는 부분은 별로지만 1960년대 강연이니 그냥 끄덕-.)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 9p,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송태욱 역


기리시탄 시대나 후미에는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시대의 후미에’, ‘생활의 후미에’, ‘인생의 후미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편지를 읽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전쟁 중에 청년 시절을 보낸 사람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정세 때문에 자신의 꿈이나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 같은 것을 어쩔 수 없이 억누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를테면 그것이 우리 세대의 후미에였던 것이지요.
…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16~17p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 - 18~19p


사상 그대로 쓰면 그건 비평이나 에세이지 소설이 아닙니다. … 사상을 열쇠라 한다면 거기에 딱 맞는 열쇠구멍 같은 이미지의 인물이나 사물이 보일 때 소설은 움직여갑니다. - 20~21p


저는 도저히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후미에 이미지가 떠올랐을 때 ‘내가 만약 에도시대의 기리시탄이었다면 틀림없이 후미에를 밟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밟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강한 사람, 즉 후미에를 결코 밟지 않고 순교한,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일본의 기리시탄 역사에 자세하게 쓰여 있고,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로마의 도서관에도 그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후미에를 밟고 배교한 사람, 그러니까 페레이라나 키아라 같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 2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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