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식당을 열었다
반달이와 마주쳤다. 이럴 땐 일단 행동을 멈춰야 한다. 반달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라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겁을 먹을 수 있다.
이상하다. 왜 안 도망가지?
평소였으면 이미 도망갔을 반달이가 계속 앉아 있었다. 엉거주춤 앉아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반달이의 다리 사이로 불룩 솟아오른 배가 보였다. 반달이가 임신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달이를 처음 본 건 2년 전쯤, 지금처럼 우연히 회사 뒤편 비상계단 문을 열었을 때였다. 다양한 색과 무늬의 새끼들을 끌어안고 반달이가 앉아 있었다. 그때 낳은 새끼들은 다 죽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 후에도 반달이는 임신과 출산을 쉬지 않고 반복했다. 무거운 배를 끌고 나타났다가 어느 날은 가벼워 보이는 뱃가죽을 찰랑이며 밥을 먹으러 오곤 했다. 계속된 출산에도 반달이의 아이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반달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꼬물거리던 아이들처럼 다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년간 반달이는 새끼를 낳았고, 어쩌면 새끼가 죽는 것을 봤을 것이다.
처음 봤을 때 1살 안팎으로 보이던 작고 젊은 반달이는 2년이 흐른 뒤 여전히 작지만 젊어 보이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을 쉬지 않고 반복했으니 윤기 나던 털이 푸석푸석해진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작은 몸으로 그나마 아직 살아 있는 건 다 반달이의 경계심 덕이라고 생각한다. 반달이는 회사 앞으로 밥을 먹으러 오면서도 매일 밥을 챙겨주는 회사 캣맘에게 절대 곁을 주지 않았다.
사람을 워낙 경계하는 반달이라 2년을 봤는데도 친분이랄 게 없지만, 그래도 2년 동안 며칠은 나와 반달이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는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반달이는 어김없이 임신 중이었다. 뱃속의 아기들 때문에 한창 배가 고플 때, 캔을 들고 다가오는 나를 반달이는 애옹애옹 울며 기다렸다.
비상계단에서 마주친 이때를 놓치면 언제 반달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회사 근처에는 골목과 오래된 집이 많아 반달이의 주 생활공간이 어딘지 아직 모른다. 다급하게 사무실에 뛰어들어가 책상 옆에 놔뒀던 비상용 캔과 그릇을 들고 나왔다. 고맙게도 반달이는 (임신했을 때 늘 그러했듯) 도망가지 않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캔을 따서 그릇에 부어놓는 동안 계단 위로 조금씩 올라오는 반달이의 묵직한 배가 힘겨워 보였다. 반달이가 쉼 없이 끌어안고 다녔을 묵직한 배 때문인지, 꽤 가까이 다가와 캔을 먹는 반달이는 2년 사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배가 부를 대로 불러 옆구리가 꼬물꼬물 움직였다. 문을 닫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음날 비슷한 시간 다시 비상계단 문을 열었을 때, 계단 밑에서 반달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캔을 따 밥그릇을 채워주고 자리를 피했다. 반달이는 나를 아련하게 보고는 조심스럽게 밥을 먹으러 왔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와 임신한 고양이용 사료를 샀다. 반달이가 다시 올진 모르지만, 단 몇 번이라도 다시 만난다면 영양이 풍부한 사료를 주고 싶었다. 2년 동안 못 본 반달이의 아기들이 이번에는 건강히 자라 엄마 옆을 지켜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날부터 반달이와 나만 아는 식당이 시작됐다. 고맙게도 반달이는 매일 같은 시간, 그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