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선미가 사라졌다.
늘 있던 자리, 앉아서 뒹굴거리던 1층 위 옥상에 온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그다음 날도 선미를 볼 수 없었다.
추석 연휴 동안 여행을 갔었다. 집사의 짐가방이 그러하듯, 짐가방에는 고양이들을 위한 선물이 가득 있었다. 그중에는 선미에게 줄 파우치도 있었다. 평소엔 캔 냄새가 풍기면 1층 위 옥상에서 일단 내려오기부터 하던 선미는 파우치를 뜯어 아무리 냄새를 풍겨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선미가 늘 있던 곳 근처에 먹을 수 있도록 두었다. 얼마 후 파우치에 담긴 음식은 깔끔히 사라졌지만, 선미는 없었다.
그날 오후 선미가 나타났다. 다리가 부러진 채로.
길었던 추석 연휴에 회사 근처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선미가 살던 1층 위 옥상에서 땅까지, 고양이들이 밟고 다니던 쓰레기통은 연휴가 끝나자 옥상 높이와 같은 창고로 바뀌어 더 이상 계단 역할을 하지 못했다. 추석 일주일 전부터 휴가로 자리를 비웠으니 직접 보진 못했지만, 조금씩 주운 정보에 의하면 길고양이를 반기지 않는 건물주의 조치인 듯했다. 덕분에 선미가 1층 위 옥상에서 내려올 방법은 없어졌다. 밥을 먹으려면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다리가 부러진 선미는 옥상만 맴돌았다. 일자로 뻗어야 할 왼쪽 앞발이 옆으로 툭 튀어나와 부은 것처럼 보였다. 내려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아까 준 음식을 먹은 건 다른 고양이인 듯했다.
'고양이 골절 수술 비용'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100~200만 원 대 후기들이 보였다. 자세한 비용을 알기 위해 고양이 진료로 유명한 병원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유선상으로는 가격을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다른 동물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마지막 동물병원에서는 직접 데리고 와서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답변을 줬다. 진료비가 왜 비밀인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비용을 몰라도 높은 확률로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나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보통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모금을 해보거나, 부업을 해서 치료비를 충당해볼까 고민했지만, 여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데려가 치료하지 않는다면 '자연치유'설 하나가 남아 있었다. ㅈ과 나는 길고양이 수명이 3년 남짓인데도 '길고양이들은 알아서 잘 산다'는 말을 믿을 정도로 순수한 나이는 이미 지났다. 당장 눈 앞의 선미는 1층 옥상으로 매일 밥을 배달하는 누군가의 호의가 계속되지 않는 한 스스로 살아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통덫을 챙겼다. 감당은? 그건 감당할 일이 생겼을 때 생각할 일이다. 선미를 구조하지 못하면 감당할 일조차 생기지 않을 테니.
선미야, 조금만 기다려!
통덫을 챙겨 1층 옥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비장했다.
인터넷에서 가끔 봤다. 구조가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통덫을 설치하니 고양이가 알아서 들어가 앉아주더라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구조 초심자라 그런지 내 눈엔 그런 글만 보였다. 솔직히 선미가 '그래, 나도 많이 지쳤어 친구야'라는 눈빛으로 스스로 통덫에 들어가 주는 장면 한 열 번 넘게 상상해봤다. 나랑 선미는 좀 친하니까. 어쩌면 이런 장면도 가능할지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정말로 그런 장면이 일어나리라고 30% 정도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통덫을 놓으면, 내 진심을 알아챈 고양이가 갸륵하게도 알아서 들어가 주는 건 줄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