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의 길생활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비장하게 통덫을 준비했건만 선미는 없었다. 옥상에 올라가 선미를 찾던 ㅈ은 신호를 보냈다. 회사 옆 고깃집 주방의 열린 창문, 그 안에 선미가 있었다. 회사 근처 고양이들에게 그 고깃집은 '가면 고기 주는 혜자로운 곳'으로 통한다. 나는 선미가 고기맛을 이미 본 줄도 모르고, 고작 캔을 까서 선미를 그날 당장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고깃집에 미리 양해를 구하러 갔다.
그리고 주방 구석 냉장고 위에 선미가 앉아 있었다. 고깃집에서는 가끔 고기를 줄 뿐 따로 돌보진 않는 상태라고 했지만, 길에서 사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먹을 것과 쉴 곳을 주는 사람들만큼 우호적인 인간들도 없을 거다. 고깃집에서 선미는 나비라고 불렸다. 다정한 고깃집 사람들은 선미의 사정을 듣고 우리에게 병원에 데려가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도 빨리 선미를 구조해 고깃집 사람들의 고마움에 부응하고 싶었는데, 선미의 동네 친구들만 통덫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거긴 들어가면 안된다는 텔레파시에도 불구하고, 선미의 동네 친구 얼룩이는 통덫에 발끝을 집어넣었고 곧 머리까지 집어넣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 통덫에 갇히는 건 고양이에게 큰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 ㅈ은 재빠르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통덫 안의 음식을 꺼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ㅈ은 얼룩이에게 냥냥펀치로 두 대를 맞았다. ㅈ 손에 피가 나는 동안 정작 선미는 고깃집 환풍구 위에 태연히 앉아있었다. 날이 저물었다.
어제의 경험으로 통덫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미의 친구들부터 배불리 먹였다. 통덫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오전에 친구들에게 베푼 기부가 돌아오는 걸까. 드디어 선미가 나타났다. 그것도 통덫 입구 앞에 태연히 앉은채로. 통덫 입구 앞에 앉은 선미를 보자 이제 막 잡을 것처럼 손에 땀이 났다.
등을 돌리고 앉은 선미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츄르(고양이에게는 마성의 간식)를 주었고 선미는 조금 쭈뼛거리며 한 발을 들여놓더니 짜놓은 츄르를 따라 조심스레 통덫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급하게 구한 거라 선미에게는 좀 작은 통덫이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선미를 놓칠까 츄르를 한 걸음, 한 걸음 앞에 짤 때마다 심장을 짜는 것 같았다.
턱-
선미 몸의 60%나 들어왔을까. 통덫 문이 닫혀버렸다.
통덫 안에 있는 발판을 들키지 않으려고 박스 조각으로 살짝 덮어두었는데, 선미 무게로 누르니 발판이 너무 일찍 밟혀버린 거다. 이젠 틀렸구나. 이 통덫은 끝이구나 했다. 그때 선미는 소처럼 묵묵히 조금씩 통덫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반쯤 닫혀서 제 몸을 누르는 통덫 문을 등에 업고.
기쁨과 함께 츄르를 짜내던 그때, 80%쯤 들어온 선미가 그 상태로 멈췄다. 더는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 상태로 밀어 넣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따라 조심스럽게 통덫 뒤로 손을 가져갔을 때, 선미는 백스텝으로 도망갔다. 이 날은 바닥에 머리를 세 번쯤 찧고 싶었다.
속상한 그날, 선미가 미처 맛도 못 본 통덫 속의 음식은, 동네 친구 흰수염이 다 먹었다. 이 구역의 브레인 흰수염은 아무리 티 안나게 가려놔도 이미 다 꿰뚫어 본 것처럼, 정확하게 발판만 피해서 고기를 물고갔다. 통덫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는 흰수염을 보니 속이 더 쓰렸다.
선미 구조 3일차
통덫에 갇힐 뻔했던 선미는 근처 지붕 위로 피신했다. 회사 주변의 오래된 건물 지붕은 위험해서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그것을 아는 듯 선미는 편히 앉아 다친 후에 제대로 하지 못한 일광욕과 그루밍을 즐겼다.
선미 구조 4일차
아무래도 우리가 바보라고 소문이 난 게 아닐까 싶다. 통덫을 완전히 알아차린 흰수염과 선미는 아예 통덫 옆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여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쟤네가 밥 준다'는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아 애써 모른척 했다.
오후 늦게 겨우 선미를 만났다.선미는 고깃집 환풍구 안에 들어가 있었다. 고깃집도 주말엔 영업을 하지 않으니 창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이제 옥상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파진 선미는 절뚝이며 다가와 간식만 조금 먹고 불안한지 다시 환풍구로 기어 들어갔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선미가 있는 쪽은 발을 디딜 곳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포획 실패 이후 선미가 완전히 마음을 돌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철수했다.
선미 구조 5일차
선미가 다시 지붕에 나타났다. 고깃집이 영업을 하지 않아 주말동안 굶어서 그런지 밥을 들고 올라가니 조심스레 다가와 먹었다. 다리 한쪽을 불편하게 들고 밥을 먹는 선미를 보며 꼭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단, 통덫에 먹이를 놔두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월요일인 오늘부터 고깃집은 다시 영업을 할테고, 고깃집에 드나드는 선미에게 캔은 큰 매력이 없어 보였다.
갈 곳이 없어 환풍구로 기어들어가던 어제를 떠올렸다. 통덫 대신 깨끗한 담요를 깐 박스를 두었다. ㅈ은 이 작전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선미에게는 음식보다 마음 놓고 쉴 곳이 더 매력적일 거라 생각했다.
선미 구조 6일차
예상대로, 선미는 박스에 들어갔다. 집사라면 알겠지만, 고양이에게 박스는 필승 아이템이다. 나는 선미가 박스집의 아늑함에 더 심취해주길 바랐다. 선미가 박스집에 익숙해질수록 새 작전의 성공률은 높아진다.
그 사이 새로운 통덫을 빌렸다. 통덫같지 않은 통덫을 찾다가 발견한 새 통덫은 가게에서 버린 플라스틱 박스를 닮았다. 차가운 철 대신 플라스틱과 아크릴 등을 쓴 새로운 통덫. 이걸로 무슨 고양이를 잡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통덫은 철로된 것인줄만 알던 고양이들에게 문화 충격을 줄 차례다. 결전의 그날을 기다리며 새 통덫 사용법을 익혔다.
선미 구조 7일차
선미가 박스에서 하루 종일 잤다. 그동안 숨어있던 곳에 가지 않고 자는 걸 보니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선미를 포기한 줄 알았지만, 나는 완벽한 타이밍을 노리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완벽한 구조를 위해 딱 하루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선미 구조 8일차
떨렸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선미 구조에 성공하는 날이다. 밥으로 선미의 시선을 뺏은 다음 잽싸게 박스를 치우고 그 자리에 새 통덫을 놓았다. 박스 안에 두었던, 선미 냄새가 잔뜩 밴 담요는 통덫 안으로 옮겨주었다.
선미는 박스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정체불명의 박스 비스므리한 물건을 조금 경계하며 우리를 살폈다. 박스에 달린 낚싯줄이 의심스럽지만 박스를 보니 들어가고 싶은 내적 갈등 끝에 선미는 통덫 앞에 앉아 그루밍을 했다.
한참 그루밍을 하던 선미는 바람에 날리는 낚싯줄이 신경쓰이는 듯 했지만, 아무래도 박스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까지는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선미는 순순히 통덫 안으로 들어갔다. 선미가 통덫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이 순간을 꿈꾸며 연습했던대로 낚싯줄을 잡아당여 아크릴 문을 닫았다. 드디어 선미를 잡았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입에서는 낄낄낄낄낄 소리가 났다. 정체불명으로 사지를 흔들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막상 잡고나니 선미는 생각보다 아주 얌전했고, 온 지구의 중력을 혼자 간직한듯 무거웠다. 미리 전화를 해뒀던 병원은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지만, 도저히 혼자는 들고갈 수 없는 무게라 ㅈ과 함께 병원을 향해 걸었다. 나는 굉장한 흥분상태였지만, 쌀 가마니같은 선미의 무게가 자꾸만 이성을 되찾게 해주었다.
“전화하신 지가 일주일이 넘었죠? 그래도 어떻게 데리고 오셨네요.”
선미를 진찰하고 나온 의사를 마주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하자고 하겠지, 입원도 해야 한다고 할거고. 텀블벅(소액펀딩)으로 돈을 모아보는 것, 글로 할 수 있는 부업, 아니면 너무 지겨웠지만 그래도 10년이나 했으니까 과외를 뛸까. 머릿속으로는 그간 생각했던 치료비 충당 방법들을 생각하면서, 의사가 당장 비용을 알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용이 크면, 수술도 한다는 뜻이니까.
“지금 저 상태로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골절된 부위의 뼈가 다 조각나 있어요.”
의사는 선미가 조각난 뼈로 딛고 다니느라 고통이 심했을 거라고 했다. 어긋난 배열을 맞추고 깁스로 한동안 고정해서 지금의 통증을 줄여주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평생 예전처럼 걸을 수는 없을 거다. 병원에만 데려가면 비용 이외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재차 물었지만,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최선인 거였다. 동물을 돌보다 보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맞닥뜨릴 때가 많다.
잠든 선미를 들고 회사까지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멀었다. 그간 아파서 웅크리고만 있던 선미는 조용한 통덫 안에서 한참을 잤다. 고양이가 스스로 내려오다가 떨어지는 걸로는 이 정도로 골절되지 않는다는 수의사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토록 바라던 진료를 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차라리 수술비가 커서 텀블벅(소액펀딩)을 할 수 있었다면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선미는
선미는 깁스를 하고 돌아왔다. 골절된 뼈가 붙을 때까지는 최소 2달, 그동안 선미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회사의 배려로 비어있던 사무실 한 칸에서 지낼 수 있었다. 물론 회사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은 참 길었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그 사이에서 따뜻했던 누군가의 도움, 다행히 도움이 훨씬 많아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원래는 두 달을 허락받았으나, 회사 사정으로 한 달이 지나고 사무실을 비워주게 되었다.
막막했다. 새끼 고양이였다면 임시보호처를 찾기가 좀 쉬웠을 텐데, 덩치 크고 나이 들고 다리를 다친데다 순화가 되지 않은 고양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 설상가상 선미가 깁스를 채우는 족족 벗어버리는 통에 병원에서는 지금 상태로 사는 게 최선일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다리도 고치지 못했고, 갈 곳도 없었다. 다리가 부러진 선미가 나타났던 날,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막막했다.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날, 병원에 다녀온 우리는 말없이 청소를 했다. 침묵 속에서 ㅈ이 입을 열었다.
"선미 데리고 내 집으로 가자."
길에서 6~7년 자란, 다리를 다친 고양이를 입양하겠다고 나타나는 사람은 없을 거다. ㅈ도 그것을 알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임시보호, 사실상 입양인 것을 알면서도 먼저 말해주어 고마웠다. 우리가 이름 지어준 선미는, 그렇게 집으로 왔다. 선미의 길생활이 공식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