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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Jan 02. 2023

도시

노동과 소비만 반복하는 어른은 안 멋있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나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해!


오랜 기간 솔로로 지내던 연애 숙맥이 나보다 먼저 결혼하다니! 역시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청첩장을 받고, 친구의 아내 분과 인사할 겸 중식당에서 만났다. 친구와는 1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결혼식 준비는 잘 되어 가는지', '웨딩 촬영은 잘했는지' 등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누고 나서, 친구가 하는 말을 주로 듣고 있었다.


친구가 관심 있는 것은 내게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시골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를 하는 친구는 최근 보건소 근처에 땅을 샀다고 했다. '땅? 투자하려고 샀나?' 싶었는데, 고구마, 무, 고추 등을 심었다고 했다. 1평에 10만 원 밖에 안 하는 땅이 있다며, 벌써 땅 주인이 되었다고 자랑 반 장난 반으로 웃고 있었다. 분명 운동을 즐기거나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애는 아니었는데, '신경 쓸게 무지 많다'는 농사일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 녀석은 이번엔 복숭아나무를 심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복숭아 나면 너도 좀 보내줄까?" 하고 들떠서 말했다. 친구의 너스레에 "맨날 말로만 그러지." 하고 퉁을 주었다.


친구는 작은 도시에 살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인 지방 광역시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나는 '고작' 지방 광역시에서 사람 많음에 질려버린 친구가 신기했다. '서울에 오면 얼마나 놀랄까.' 놀 곳 많고, 사고 싶은 것 많고, 구경거리도 많은 서울의 모습을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뒤이어 출퇴근 시간의 사람 가득한 지하철이 떠올랐다. 유명 맛집의 1시간 웨이팅이 떠올랐다. 여유를 찾고 싶어 방문했던 카페의 좁디좁은 자리 간격도 함께 떠올랐다.






도시는 그런 곳이다. 좁은 땅에 사람은 많다. 사람이 많으니 남과 비교했을 때 돋보이는 면을 갖추라고 한다.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걸 찾고, 그걸로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자기가 잘하는 것을 제공해주고 있다. 내가 스스로 하지 못하거나 직접 하기에 비효율적인 것은 돈을 주고 남이 해주는 걸 받으면 된다. 나는 점점 무언가를 스스로 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돈 잘 버는 방법만 찾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시골 농부'가 된 친구와 2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나 홀로 시골 마을에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수많은 타인 속에서 내가 정의되던 도시에서 벗어나니, 삶의 중심은 더 또렷하게 내게로 옮겨왔다. 유명한 것, 유의미한 것, 효율적인 것이 내 삶을 살아가게 하진 못했다. '나 혼자 시골에 살면 일주일도 못 살겠는데...' 적잖이 충격받은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또 한 번 자랑했다. "동네가 워낙 후져서 치킨 배달이 안 돼. 그래서 5만 원 주고 튀김기를 샀어. 직접 반죽해 먹어보니까 맛이 괜찮아.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더라고."


그래. 치킨이 2만 원이라고 불평할 시간에 치킨 한 번 만들어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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