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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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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Dec 21. 2021

연애정경

#140 박소정 [연애정경]


p.8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연애담을 접한다. 피상적이고 도구적이며 때로는 감정에 매여 휘청이는 우리들의 연애를 보고 듣노라면 연애야말로 20~30대의 가장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젊은 세대의 물적 조건과 가장 민감하게 묶여 있는 영역, 섬세한 정치가 작동하는 관계. 그것이 연예가 아니고 무엇일까. 연애가 중요하지 않다면 술과 담배의 판매량은 줄어들고 사랑 노래는 의미를 잃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연애는 현실과 밀착한 실용적인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대론,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근대성과 탈근대성 같은 묵직한 개념과 이론으로도 접근 가능한 주제다.



p.17

자기 계발 하는 주체

특정한 체제는 특정한 주체성을 만들어 낸다. 개인은 사회의 지배적 관념을 내재화하고 그에 입각한 사고방식을 갖는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존속한 가부장제는 가부장적 인식을 가진 주체성을 양산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가사를 여성의 몫을 여기는 통념은 가부장제가 빚은 사고방식에서 비롯한다. 정리하자면, 사회가 공유하는 어떤 지배적인 체제나 관념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 양식을 규정하고 그에 적합한 주체성을 배양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효과'나 푸코의 '통치성'과 '규율'이라는 개념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이들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국가나 사회가 개인을 강제 혹은 억압하는 방식으로 특정 행동 양식을 훈련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관념을 체득하여 자율적인 행동으로 실천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특정한 주체성을 보유한 개인을 만든다. 사회학자 이동진은 이를 '자기 계발 하는 주체'라고 명명한다. 자기 계발은 보통 자신의 재능이나 자질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 내면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자기 계발은 활기차고 부지런한 삶을 만들어 주는 요소로 늘 장려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자기 계발의 의미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은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고 경영해 나간다. 기업이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도 이윤을 증대하기 위해 경제적 행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듯, 개인도 기업의 행동 양식을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다.   



p.25

결혼의 기회비용

'결혼의 기회비용'이라는 표현을 들어 본 적 있는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가 갖는 가치를 뜻한다. 그러니까 결혼의 기회비용은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일 때 누리게 되는 기회 혹은 가치로 해석된다. 부모 세대에게 결혼의 기회비용이 독신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정도를 의미했다면, 현대의 결혼 적령 세대에게는 포기해야 한 큰 경제적 가치와 기회의 문제로 다가온다. (중략)

    포기해야 하는 기회도 만만찮다.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 시장은 개인에게 언제든지 노동 가능한 '자유로운 노동력을 이 되기를 요구한다. 주말이나 밤에 특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지방 혹은 해외에 나가 근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24시 노동 가능한 경쟁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두 가치가 상충할 때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정에 전념한다. 과거와 달리 독립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여성들은 결혼하면서 발생하게 될 경쟁력 상실과 불이익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아 결혼을 포기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결혼은 당연하게 지나갈 인생의 통과 의례가 아닌, 기회비용을 따져 신중 하게 고려하고 계산해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결혼의 기회비용이 커지면서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변화와 인식 변화를 우리는 '보편혼의 붕괴' 라고 부를 수 있겠다.



p.26

    포기해야 하는 기회도 만만찮다.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 시장은 개인에게 언제든지 노동 가능한 '자유로운 노동력'이 되기를 요구한다. 주말이나 밤에 특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지방 혹은 해외에 나가 근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24시 노동 가능한 경쟁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을 불가능하다. 두 가치가 상충할 때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정에 전념한다. 과거와 달리 독립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여성들은 결혼하면서 발생하게 될 경쟁력 상실과 불이익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아 결혼을 포기하게 된다. (중략)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결혼은 당연하게 지나갈 인생의 통과 의례가 아닌, 기회비용을 따져 신중하게 고려하고 계산해서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결혼의 기호비용이 커지면서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변화와 인식 변화를 우리는 '보편혼의 붕괴'라고 부를 수 있겠다. 



p.36

위험 사회 속 합류적 사랑

새로운 사회 조건은 새로운 개인성을 만든다. 근대 사회를 지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인간은 더 이상 위험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울리히 벡은 이런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 risk society'라고 부른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원전 폭발이나 기후 변화를 야기해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낳았다. 핵전쟁과 생화학 전쟁의 위험은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그를 통해 축적하는 사이 현대사회를 둘러싼 위험은 여러 영역에서 몸집을 불렀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벡의 말처럼 위험은 빈부,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안혹 덮쳐 온다. 위험 사회는 만인의 불안을 유발하고 모든 인간에게 계산적이길 권유한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위험을 계산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문제는 위험을 셈하는 방법이다. 위험이 다원화되고 그 범위가 커질수록 개인이 놓인 불안의 조건은 늘 새롭다. 전통적 행봉 규범은 무용하다. 위험은 폭풍에 대비해 울타리를 보수하는 정도의 예측과 행동으로 방어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핵이 떨어지거나 지진 발생으로 모든 것을 잃지도 모를 일이다. 



p.44

    흥미롭게도 썸이 지닌 불안정한 '변화 가능성'이야말로 젊은 세대의 욕망이 반영된 요소다. 사람들은 "연애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고 "썸 타고 싶다"라고 말한다. 연인 관계는 연인 사이라는 분명하게 규정된 관계로 마음의 책임을 요한다. 그런데 썸은 이런 책임감에서 자유롭다. 정의조차 모호한 썸은 어떤 식으로든 규정된 관계가 아니다. 사람들은 규정된 관계가 요구하는 규범과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욕망한다. 

    썸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는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투영한다. 때론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일각에서는 연애가 요구하는 경제적 부담, 관계적 부담 등은 기피하고 연애가 주는 설레는 감정만 소비하고 싶은 이기심에서 비롯한 관계로 썸을 바라본다. 그러나 한번쯤은 현대의 유동하는 사회 조건 속에서 관계를 갈망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된 연애의 형태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인을 책임지는 것이 사치인 현실 조건에서 연애가 주는 약간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전략이 발현된 형태가 썸이다. 



p.93

    연애는 점차 친밀성intimacy의 영역에서 외밀성extimacy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외부의 것이 내부의 기초가 되는 양상을 외밀성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 외부 기준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작동할 때, 친밀성은 외밀성이 된다. 현대 연애 주체는 스펙으로 구체화되는 신자유주의, 생존주의, 자기 계발주의의 레짐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연애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제시하는 영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는 이런 연애의 외밀성을 보다 뚜렷하게 부각한다. 



p.126

캐슬린 로우Kathleen Rowe는 '사랑이란 여성이 주인공이 될 수 있또록 할리우드가 허락한 몇 안 되는 영역'이라고 했다. 



p.130

반성하는 남성의 등장은 남성성 자체의 변화를 암시한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발견된다. 헤게모니는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를 갖고 있는 집단의 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가부장제 구조에서 지배적 형태로 수용되는 남성성을 의미한다. 경제력이 출중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 주체인 동시에 가부장적 권위를 지닌 강인한 남성성이 그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 남성들은 늘 헤게모니의 주체였기 때문에 성장의 여지도, 필요도 없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여자 친구에게 쥐락펴락당하는 견우 캐릭터가 처음 나왔을 때 관객이 환호한 이유는 남성 캐릭터의 전에 없던 신선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형화된 견우 캐릭터는 <7급 공부원>, <시라노; 연애조작단>, <김종욱 찾기>, <위험한 상견례>, <슬로우 비디오> 등에서 꾸준히 재현되고 있다. 영화 속 남주인공은 헤게모니적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는커녕 소극적이기까지 해 연애 관계의 주도권을 여성에게 넘긴다. 이들은 때로 소심하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일본에서 처음 유형을 드러낸 '초식남'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기보다는 초식 동물처럼 온순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로맨틱 코미디 남성 캐릭터는 초식남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남성성의 변화는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서 관찰된다.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영역에서 출발한 남성의 위기감이 존재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삼는다. IMF 외환 위기를 맞았을 때 부계 가족주의의 실패나 가부장 권력의 약화 같은 남성성 위기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은 역사 속에서 늘 헤게모니를 쥐지 못한 상대적 약자였기 때문에 위기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다. 반면 남성의 헤게모니는 경제적 위기로 인해 위협받으며 남성성의 위기 담론을 낳는다.



p.149

신자유주의 시대에 연애하는 우리를 보며 누군가는 낭만의 종언을 외칠지도 모른다. 로맨스 관계를 강제하던 힘이 사라지자 연애는 부유한다.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 연애를 올려놓고 연애 주체들에게 끊임 는 조율과 타협을 요구한다. 인격적 관계에서 요구되는 덕목과 비인격적 관계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하나의 정체성 안에서 적절히 발휘하길 바란다. 마음의 진정성과 시장주의적 사고방식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젠더 분업이나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완전히 떼어 내지 못한 근대적 이데올로기와 동등한 남녀 관계를 지향하며 쿨한 사이를 말하는 현대적 관계 양식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에서 포착되는 어려움은 결혼의 유예, 자기중심적 연애, 썸과 같은 유동적 관계의 반복 등의 문제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는 연애 불가능성 담론으로 귀결된다.

    연애 불가능성 담론은 연애 욕구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한다. 담론은 사회 구조가 낳은 결과이지 개인의 욕구에서 발현된 것은 결코 아니다. 연애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회를 향해 연애인들은 보란 듯이 새로운 연애의 규칙과 이상향을 만들어내며 연애 불가능성 담론에 균열을 낸다. 그 균열은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서 비롯된다.

    연애는 최후의 보루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노력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랑이다. 그리고 노력과 응답은 개인이 일말의 능동적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울리히 벡이 현대 사회의 사랑을 유대의 방식이자 안식처이며 신흥 종교라고 말한 것처럼 연애는 그만큼의 위안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연인들은 그 위안의 영역을, 최후의 보루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군분투의 흔적인 많은 현재 진행형의 연애 관계와 개인의 주체성은 'N포'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관적 담론에 대한 반증이다.



p.158

    국가가 나서서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 준다니, 고마워라도 해야 하나, 정부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청년들은 국가가 직접 나서 자신들의 짝을 맺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청년들은 어떻게든 연애를 해나가고 있다. 국가는 연애를 어떻게든 해나가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처지가 어떻든 연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 정책은 국가와 가족의 그늘을 간신히 벗어난 연애를 다시 국가가 주관하려는 시대 역행적인 발상이다. 사적 영역에 공적 영역의 개입을 늘려 친밀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연애마저도 기를 쓰고 노력해야 하는 사회다. 연애 가능한 사회, 결혼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연애와 결혼에 문제를 겪고 잇는 세대를 살펴야 한다. 청년이 시작점이어야 하는 이유다. 정부 정책은 노력에 합당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요구할 줄 아는 청년세대가 되어야 한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부디 당신의 연애에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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