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의 숏드라마 태동기는 남성향이 여성향보다 우세했습니다. 개연성 없는 노출 등으로 남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에 남자들은 주머니를 열었죠. 숏드라마가 웹소설에서 출발했고 중국 웹소설 시장은 남성향이 주도를 하고 있던 탓도 있습니다. 그 당시 작품들을 보면 하렘, 근친, 성적 판타지 등등 가관입니다. 하지만 이후 산업이 좀 커지고 각계의 관심을 받게 되자 남성향 숏드의 셀링포인트는 더 이상 내세울 수가 없었고 반대급부로 여성향 숏드가 시장에 넘치기 시작합니다.
2. 과도한 선정성을 제외하고 남성향 숏드가 터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순간 혜성같이 등장한 남성향 숏드가 있습니다. 숏드 제작사 1세대 마이야(麦芽)가 제작하고 유통한 '사라진 요리의 신'이라는 작품인데, 남성향 작품치고 드물게 하렘, 폭력 등의 자극적인 요소 없이 요리를 곁들인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보여주며 매출 50억+, 저번 달 중국 숏드 업계를 휩쓸어버렸죠.
3. 살짝 줄거리 소개를 하면... 각종 요리대회를 휩쓸던 요리의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춥니다. 이어서 2화에서 시골 허름한 주점의 요리보조로 나오는 주인공... 아무도 그의 실체는 모르고 그는 선배의 구박에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죠. 어느 날 악의 세력(?)이 와서 주점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고 주점의 사장님에게 3:3 요리대결을 제안하며 지는 쪽이 주점을 놓고 물러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악의 축에서 등장하는 엄청 세 보이는 악당 요리사 3명... 여기에 약간 모자라보이는 주인공 팀... 얼떨결에 주인공은 첫 번째 요리 대결에 나서게 됩니다. 첫 번째 요리 대결의 주제는 칼솜씨(도공)를 겨루는 것입니다. 악당 요리사는 여유만만하게 큰 얼음덩어리를 꺼내고 화려한 칼질 몇 번에 훌륭한 용 한 마리가 나옵니다. 현장은 놀라움에 물들고 "후후, 이제 넌 무엇을 보여줄 테냐"라고 묻는 악당... 주인공은 물끄러미 상대를 보더니 어항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가져옵니다. 물고기를 만지막거리다가 칼질을 시작하는데... 약간의 소란이 있은 후 어항에서 물고기가 뼈만 남은 채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꺼내어 근맥을 파악 후 엄청난 속도의 칼질로 신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회를 떠버렸네요. 너무 정교한 칼솜씨에 물고기는 자신의 살이 썰린 것도 의식 못했습니다! 네... 뭐 이런 스토리입니다.
4. 이 정도가 무료버전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걸 보는 중국인들도 다들 칼질 부분에서 뿜었다고 합니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는데... 사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스토리입니다. 일본 소년 만화에서 자주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죠.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주성치 영화 느낌으로 버무렸습니다. 쓰레기 같은 악당에 포커싱하기보다는 주인공의 인간미에 집중했고, 침대 정사 씬보다는 요리 과정과 비주얼 훌륭한 요리를 보여줬으며, 감정의 극단을 달리는 스토리보다는 가벼운 유머를 곁들여 전달하고 싶은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5. 사라진 요리의 신은 남성향 숏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선정성과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전통적인 소년만화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이는 향후 남성향 숏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요리라는 소재를 통해 보편적 흥미요소와 판타지적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켰고, 과도한 자극이나 선정성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즉 유료결제 구간에서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결제하게 만든 거죠. 남성향 숏드라마 장르 전체의 질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