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잃어가는 내 모습
우유부단.
나는 언제부터 이리 우유부단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뭐하고싶냐 뭐먹고싶냐는 대답에 선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
예전에는 항상 하고싶은 것과 먹고싶은 것이 있었고 그 욕구가 해결될 때까지 내 안에 맴돌아 누가 물어오면 바로바로 대답이 나왔다. 물론 개의치 않는 것들도 많았지만 어떤 종류에서는 확실히 원하는 게 존재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는 나의 욕구보다는 아이의 욕구와 가족이 먼저인 삶이었다. 그건 내가 선택했던 건지 선택을 강요당한건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의 끝은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희미해져간다는 데에서 오는 우울감이었다.
내가 하고싶은 것과 다른 것들이 충돌하는 경우 선택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나는 엄마였고 며느리였고 또 어른이었으니까. 그냥 이런게 어른의 삶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아이가 삶의 낙 아닌가요?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는 독립해서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리고나면 나에게는 뭐가 남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참으로 초조해졌다. 어떤 경우에도 희생은 답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어떻게 했는데 류의 보상심리가 참으로 못나보여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도 많이했던 터였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야 서로 건강한 관계가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서로 힘이 되고 응원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가족과 가까운 관계에서 바람직한 양상이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이리 나를 태워가며 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건가 라는 질문에는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원동력은 뭘까.
지금은 양보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서 다시 찾을 나의 모습은 뭘까. 하나하나 이루어나가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엄마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축하하고 뿌듯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남편의 사업이 이리진행되고 있고 아이들은 어떻고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를 보며 나는 아이와 남편을 빼면 뭐가 남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지금의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걸 당당히 요구하고 타협하고 얻어내는 걸 해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마치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시댁식구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것도 있다.
가끔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내가 힘든 건 아닌가라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냥 생각없이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더라면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만 그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얼마 전 남편은 차를 또 바꾸었다. 11년간 7번째 차였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편은 어떤 이유를 갖다붙여서라도 마음 먹으면 결국 차를 바꾸었고 진력이 난 나도 포기한지 오래였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십년이 넘은 장롱면허를 탈출했는데 자잘한 사고를 몇 번 냈었다. 일년 사이에 접촉사고가 3번가량 있다보니 더이상 다이렉트로 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보험수가는 많이 올랐고 남편은 보험재가입부터 한동안 타박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차를 바꾸면서 아이가 셋이나 되어 패밀리카로 선택하고 차체가 많이 커졌는데 처음 몰고나갔던 날 난 결국 또 차를 긁었다.
셋째가 태어나면서부터 남편은 열심히 일했다. 가장의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을거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쭈욱 사업을 해오던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가뜩이나 돈에 예민한 남편이라 나는 싸우기 싫어서 정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사고가 날 때마다 놀랐을 내 걱정보다 왜 조심하지않았냐는 말을 더 많이 들은 나로서는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던 것.
그 날은 매부의 생일을 기념해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창 저녁을 먹다가 막내가 낮에 있었던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다섯살인 막내에게는 큰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 남편은 ‘내가 그 사고땜에 오늘 백만원을 쓰고왔다’고 버럭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앞에서 꼭 그랬어야했을까.
그리고 2층에 올라갔고 나머지 식구들은 당황했지만 마저 식사를 했다. 저녁을 다 먹은 첫째가 2층에 무언가를 가지러 올라갔을 때 갑자기 위에서 남편의 큰소리가 들렸다. 뭘 그리 잘못을 했을까 싶냐마는 그리 소리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남편은 나에게 쏟아내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터뜨린 것이다.
혼란스러웠고 화가 났다. 어른이기에 참고 살아가는 나도 그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저리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는 옛날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스쿠터를 타고다니던 남자친구에게 빌려타고 나온 날. 예상치 못한 경사로에서 스쿠터를 세워야했는데 내 맘대로 되지않아 결국 나는 가로수를 받았고 다리에 크게 멍이 들었다. 내가 제어하지 못한 스쿠터가 너무 무서웠고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 묻기보다는 어디냐며 스쿠터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등을 묻고는 온다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훔치다가 결국 헤어져버렸다. 나보다 스쿠터가 우선인 사람과 더이상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세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싸우지 말자라고 다짐하자 너무도 깊은 우울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남편은 정말 돈을 벌어오는 사람일 뿐인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일 수 있나. 나에게 그는 어떤 의미인가. 며칠을 그렇게 그저 습관처럼 집안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트리거는 아니다. 그 때 빵터진게 아니니까. 오히려 총이라기보다는 폭탄이었다. 그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