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병이 가장 큰 병이야
난 엄마가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켜고 쇼파에 앉아있는 걸 본적이 없는 것 같아.
며칠 전 딸이 한 말이다.
뭐 그렇다. 아이들이 있을 시간에는 티비를 보기도 애매할 뿐더러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 하지 않는 시간인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시집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거실이라는 공용공간에서 여유를 부리며 쇼파에서 티비리모컨을 쥐고 앉아있는게 편치않아서 이기도 하다.
그래도 보고싶은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있으면 스마트폰에서 다시보기를 하곤한다. 아이들을 재우고 잠들기 전이나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난 뒤 여유부릴 때.
갑자기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우울함이나 마음이 아픈 것도 감기에 걸린 것처럼 지나가는 것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드라마.
보통과 다를지라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주는 드라마.
모두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는 시집에서 나혼자만 결이 다른 사람으로 살면서 이 드라마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극 중의 장재열(조인성 분)은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정말 애정했던 드라마.
나는 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타입이다. 어떤 일이 있고 한번 꼿히면 계속 각도를 달리하며 생각하는 편이다. 누군가와 대화 후에 내가 그렇게 이야기한 게 잘한 건가, 이렇게 말할걸 그랬나부터 기분 나빴던 일도 그사람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지않을까 왜 그렇게 날 대했을까 등등. 물론 나 혼자하는 생각이기에 결론은 내 멋대로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객관화 시켜보려는 의지이다.
그래서 사실 남편이 누군가를 알게되고 푹 빠져있을 때도 나는 초를 많이 치는 편이다. 사람이란 자고로 좋은 면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면이 있고 지금은 좋은 일도 나중에 알고보면 그렇지 않은 일도 많은데 무조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일단 경계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이런 성향때문에도 많이 싸웠다. 남편이 푹 빠져있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남편은 또 그걸 엄청 변호하고 나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했다.
물론 나도 그런 면이 없진않아서 항상 경계한다. 길거리를 다니면 도를 믿으세요 류의 사람이 엄청 붙는다. 일단 처음에는 사람의 말을 되게 잘 믿는 편인데 자꾸 그 이면을 보려고 하는 건 이런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하는 무의식의 산물인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사기 잘 당할거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나는 사기 당하기 전에 항상 정신을 차리고 실제로 크게 사기를 당해본 적은 없다.
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여지가 많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애매모호한 말이나 둘러대는 말따위말이다. 그 말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쏟다보면 결론이 명확히 날 때까지 내가 취해야할 입장마저 모호해진다.
이러한 내 성향은 결혼 후에 더 폭발적으로 커졌다. 시월드에서는 많은 일이 결론이 나지 않는 일 투성이였다. ‘나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말을 할까’ ‘혹시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그래서 이게 맞는건가’ 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 것 같다.
그 결론이라는 게 몇 년이 지나서 나기도 했고 그동안 나는 어떤 액션도 제대로 취하지 않아 너무 늦어버린 일도 많았다. 그렇게 나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결국 내 설자리는 없어졌다. 나는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정작 상대방은 나에 대해 모른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굉장히 많은 부분이 비합리적이고 내가 느꼈던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하지만 풀어내기엔 너무 늦어버린 탓에 고스란히 마음 한켠에 차곡차곡 묻어두었다. 그리고는 결국에 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그 때 말을 했어야했다. 뭘 그런걸 묻느냐는 반응이었을지라도 내가 가진 의문과 부당하다고 느꼈던 감정을 그자리에서 상대방 앞에 내놓았어야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독이었다.
내가 참아온 것들에 대한 위로의 말이나 걱정보다는 ‘여태 참았으면 계속 참지그랬냐’는 말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그것이 이 세상의 이치였다.
수치화되는 병 앞에서 마음의 병은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다.